인피니언과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NXP 등 유럽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 현지 생산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지만, 미국의 동맹국인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의 기업들은 글로벌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27일 중국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인피니언과 ST마이크로, NXP 등 유럽 칩 제조사들은 중국 현지 시설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인피니언과 NXP, ST마이크로 등은 미국 텍사스인스투르먼트(TI)와 함께 차량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의 절반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전기차를 포함한 최대 신에너지차(NEV)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1370만대 중 중국이 820만대를 판매하며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의 대표 전기차 기업인 비야디(BYD)는 올해 1분기에만 86만7000대를 인도하며, 글로벌 점유율 20.2%로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전기차 시장에서 유럽 자동차 기업들의 약세가 지속되는 반면, 중국은 강력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매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이 차량용 반도체 업계 큰손으로 떠오르며 관련 기업들의 중국 지역 매출 비중도 높은 상황이다. 인피니언과 NXP IR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지역 매출 비율은 각각 25%, 33%로 가장 높다. ST마이크로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매출 비중은 30%로 이중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인피니언과 ST마이크로, NXP 등 유럽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이 현지 생산 체계를 확충하고 있다. ST마이크로는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인 실리콘 카바이드(SiC) 개발을 위해 중국 사난 옵토일렉트로닉스와 32억달러(약 4조6000억원) 규모의 합작 투자를 진행한 생산 시설을 내년 4분기 본격 가동할 방침이다.
중국 텐진에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NXP는 중국 내 신규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앤디 미칼레프 NXP 수석 부사장은 지난 5일(현지시각) 블룸버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중국 고객사를 지원하기 위해 현지 협력 기업과 생산 시설 등 공급망을 신규로 구축할 계획”이라고 했다.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과의 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NXP는 지난 11월 중국 2위 파운드리 기업인 화홍반도체와 40㎚(나노미터, 10억분의 1m) 공정 기반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우시 공장을 운영 중인 인피니언도 현지 생산 시설이 후공정과 패키징에 치중돼 있어 일부 전공정을 중국 파운드리 기업에 위탁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저조한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율도 차량용 반도체 기업에 기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대적인 지원금을 편성하고 있지만 첨단 반도체 및 관련 장비에 대한 지원 비중이 높아 아직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의 중국산 탑재 비중은 10% 안팎에 불과하다”며 “인피니언 등 유럽 기업이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중국 전기차 시장의 규모를 고려할 때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이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 현지 생산을 늘리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라며 “아직 차량용 반도체 등에 대해서는 미국의 구체적인 규제안이 나오지 않은 만큼 통상 산업 통제에 엮여있는 유럽 기업들이 생산 능력을 확충하고 있지만, 차세대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제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