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출 통제와 레거시(구형) 반도체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로 중국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자국 내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 주도로 수십조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편성했지만, 올해 중국 기업들의 투자 유치 건수는 전년 대비 약 3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17일(현지시각)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현지 시장조사업체인 JW 인사이츠의 자료를 인용해 “중국의 반도체 산업 투자 거래가 전년 대비 35.9% 감소한 677건으로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수출 규제 심화와 레거시 반도체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로 투자가 전년 대비 줄었다고 매체는 분석했다.
현재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지원금이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 주도 펀드를 통해 지난 2014년 1387억위안(약 27조3710억원), 2019년 2041억위안(약 40조2770억원), 올 상반기 3440억위안(약 67조8849억원)의 자금을 조성했다. 이를 통해 반도체 제조사와 여기에 투입되는 소재와 장비, 부품 기업들을 직접 지원하고 있다. SCMP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정부는 화웨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 메모리 제조사 화훙반도체 등 25개 반도체 기업에 모두 205억3000만위안(약 3조9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다만, 첨단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의 규제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제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레거시 반도체 산업을 우선적으로 집중 육성하면서 공급 과잉이 야기됐다. CXMT와 JHICC 등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SMIC와 같은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도 정부 지원에 힘입어 저가 공세를 통해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대만 경제일보 등 외신에 따르면 CXMT와 JHICC은 DDR4 등 레거시 제품을 반값에 시장에 내놓고 있고, SMIC와 화홍반도체 같은 중국 파운드리 기업은 경쟁사 대비 40% 가까이 가격을 할인해 공정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CXMT 등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관세 부과 가능성을 고려해 저가로 메모리 반도체 물량을 밀어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공급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면서 판매 가격이 낮아지는 추세도 빨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여기에 미국의 수출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SCMP는 “현재 중국에서는 정부 지원 자금이 반도체 투자를 지배하고 있다”며 “미중 무역 분쟁의 격화로 중국과 연관된 AI 및 반도체 분야에 대한 미국의 통제 조치가 심화돼 자금 유입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추세에 AI를 중심으로 한 첨단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JW 인사이츠는 올해 3분기 중국을 제치고 미국이 반도체 산업 최대 시장으로 올라섰다고 밝혔다. 국가통계국(NBS) 통계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생산량의 척도인 11월 중국 집적회로(IC) 생산량 증가율이 올해 처음으로 한 자릿수(8.7%)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샤오민 JW 인사이츠의 총괄 매니저는 “AI에 필수인 첨단 반도체 등에 대한 수요 급증에도 중국은 제한을 받고 있지만, 미국은 AI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