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게임업계 맏형인 넥슨이 ‘메이플스토리’ 이용자가 제기한 확률형 아이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줄소송’이 이어질 전망이다. 일부 국내 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 제도를 불투명하게 운용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다. 법조계는 현재 진행 중인 확률형 아이템 관련 소송과 공정위 조사 등에서 이용자들에게 유리한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에서 일정한 확률에 따라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식의 유료 콘텐츠다. 일종의 ‘뽑기’로 볼 수 있다. 이용자는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사고, 이를 사용하면 특정 확률로 실제 아이템이 당첨된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대법원이 확률형 아이템 소송에서 이용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현재 진행 중인 소송과 공정위 조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메이플스토리 이용자 김준성씨가 넥슨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매매대금 반환소송에 대해 넥슨이 구매금액의 5%를 반환하라는 2심 판결을 확정했다. 김씨는 2021년 유료 확률형 아이템 ‘큐브’를 이용한 장비 아이템 강화 확률이 실제 고지한 확률보다 낮게 조작한 정황이 드러나자, “게임에 쓴 금액 1100만원을 환불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김씨를 대리한 이철우 한국게임이용자협회 회장(변호사)은 “대법원의 판단은 최종적인 법률 해석으로서 하급심 법원과 여타 기관의 해석기준이 되므로, 앞으로 여러 게임사들의 확률 조작 사례에 중요한 판단 잣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일부 게임사가 사전에 공지한 확률보다 실제 확률을 낮게 설정해 소비자들을 속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공정위 조사를 받는 게임사는 크래프톤(259960), 위메이드(112040), 그라비티, 웹젠(069080), 컴투스 등 5곳이다.

◇ 게임사 핵심 수익원 ‘확률형 아이템’… 캄캄이 운영 비판

확률형 아이템은 지난 2005년 넥슨이 ‘메이플스토리’에서 ‘부화기’를 판매하며 인기를 끌자, 게임사들의 핵심 사업 모델로 자리 잡았다. 2023년 게임백서에 따르면, PC 게임 매출의 76%, 모바일 게임 매출의 75%가 확률형 아이템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22년도 한국 게임 매출이 약 22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올해 기준으로 20조원에 가까운 매출이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하면서 넥슨코리아 매출은 2005년 2177억원에서 수직 상승해 2013년 매출 1조1000억원을 달성했다. 국내 게임사 최초로 ‘1조 클럽’에 가입한 것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엔씨소프트 역시 리니지M 등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과도한 사행성 논란과 게임사들의 ‘캄캄이’ 운영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용자들은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이나 마찬가지라며 게임사에 확률을 공개하라고 요구해왔다. 이에 지난 3월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의무화 법안(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시행됐다.

성수민 법무법인 한앤율 변호사는 “게임사의 확률형 아이템 확률정보표시의무 조항 시행으로 확률 조작이 방지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에 넥슨이 패소한 판결 영향으로 이용자들이 적극적으로 확률형 아이템 관련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현재 게임사들은 공정위 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마지막 조사 이후 공정위로부터 연락은 없다. 다만 이번 넥슨 판결이 (게임사에) 부정적으로 나오면서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 넥슨 사옥. /뉴스1

◇ “공정위 조사 결과 따라 단체 소송·조정 이어질 것”

크래프톤은 현재 대표작 ‘배틀그라운드’와 인기 그룹 ‘뉴진스’의 콜라보 아이템과 관련해 공정위 조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틀그라운드 내 유료 아이템 상점에 뉴진스 협업 아이템을 출시하고 확률 정보를 공개했으나 실제 확률과 공개된 확률이 달랐다는 혐의다.

위메이드도 특정 확률형 아이템 1종에 대한 확률정보를 다르게 기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아이템은 캐릭터 성능 강화를 위한 재료를 지급하는 ‘조화의 찬란한 원소 추출’ 상품이다. 운영진은 희귀도가 가장 높은 전설 등급 아이템의 획득 확률을 0.0198%에서 0.01%로, 영웅 등급 아이템의 획득 확률은 1%에서 0.32%로, 희귀 등급 아이템의 획득 확률은 7%에서 3.97%로 각각 정정한 바 있다.

성수민 변호사는 “공정위 조사에 따라 일부 이용자들이 게임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나 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라며 “넥슨도 명백한 기망행위가 있었던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위법 행위에 대한 인정이 쉬웠다. 다른 게임사들도 공정위의 판단이 나오면 집단 조정 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번 대법원 판결과 같은 내용으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메이플스토리 이용자 711명이 제기한 민사소송이 제기돼 진행 중이다.

홍정표 법무법인 거북이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게임사들에 경고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며 “이용자들이 확률형 아이템의 실제 확률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소송을 통해 게임사들에 책임을 묻고 구매 금액을 일부 환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앞으로 소비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다툴 여지가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