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내년 설비투자 전략을 신규 장비 반입 대신 기존 장비 업그레이드와 공정 전환,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생산능력 확대로 잡으면서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수급에 변화가 예상된다.
통상 반도체 미세공정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두 회사의 생산량 손실(Loss), 소위 ‘자연감산’은 범용 D램 시장에 공급 부족을 초래해 수급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 CXMT가 구형 D램 시장에서 공급량을 대폭 늘린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선 감산에 따른 D램 가격 상승 수혜가 제한될 수 있다.
21일 업계에서는 내년 설비투자(메모리) 규모로 삼성전자는 약 35조원, SK하이닉스는 19조원을 추정하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의 투자가 D램 공정 전환 투자 및 HBM 생산능력 증설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전반적으로 감산 기조와 투자 축소가 이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에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셈이다.
두 회사는 앞서 올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레거시(구형) D램 비중을 낮추고 선단 공정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강조한 바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최선단 공정 D램(10나노 5세대·1b) 비중은 20~30%, 10나노 4세대(1a)는 약 30%를 차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내년에 양산이 시작되는 10나노 6세대(1c) D램 비중을 감안하면 전체의 약 70%가 고성능 D램인 셈이다.
다만 구형 공정에 비해 수율과 공정 스텝수가 많은 첨단 D램은 생산량을 단 번에 끌어올리기가 어렵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1b D램 웨이퍼 투입량 대비 출하량이 기존 구형 공정과 비교해 30% 낮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또 내년 양산이 시작되는 1c D램 역시 공정 복잡성 증가로 70% 이상의 수율을 달성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선단 D램 공정상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올해 재설계 작업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주요 생산 프로세스가 변경되거나 필요한 경우 핵심 장비들에 대한 재정비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HBM 생산에 사용되는 1a, 1b D램의 경우 SK하이닉스와의 경쟁 우위를 위해 설계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D램 경쟁력이 흔들리기 시작한 기점은 1b D램부터였으며 이에 대해 삼성 내부적으로 프로세스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수율 향상과 성능 개선을 위해 노광장비를 비롯해 화학물질, 테스트 등 많은 부분에 변화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D램 출하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글로벌 D램 공급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빠르게 레거시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 신석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 CXMT의 공격적인 생산능력 증설(2025년 월평균 웨이퍼 30만장)로 레거시 반도체 공급 과잉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중국산 D램의 위협이 사실상 현실화됐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략적 방향성도 달라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편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CXMT가 2026년쯤 미국 마이크론을 제치고 세계 D램 점유율 3위 자리를 꿰찰 것으로 전망했다. CXMT의 생산능력은 2년 전 월평균 7만장에서 올해 말 월평균 20만장 수준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2018년 미국의 제재를 받았던 중국 D램 업체 푸젠진화도 DDR4를 주력으로 양산하며 생산능력을 월평균 10만장 이상으로 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