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15일 공시했다. 전일 4년 5개월 만에 주가가 4만원대로 추락하는 등 중대한 위기를 맞이한 가운데 본격적으로 ‘주주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는 단기적인 부양책에 불과하며, 회사의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 회복과 위기 극복 방안을 내놓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이날 삼성전자는 공시를 통해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1년내 분할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주주가치 제고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3조원의 자사주는 3개월내 사들여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며 “이달 18일부터 내년 2월 17일까지 장내 매수 방식으로 매입해 소각할 계획인 자사주는 보통주 5014만4628주, 우선주 691만2036주”라고 밝혔다. 나머지 7조원 어치 자사주에 대해서는 자사주 취득을 위한 개별 이사회 결의시 주주가치 제고 관점에서 활용 방안과 시기 등에 대해 다각적으로 논의하여 결정할 예정이다.
전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일 대비 1.38% 하락한 4만99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지난 2020년 6월 15일 이후 4년 5개월만의 최저가다. 시가총액은 298조원으로 300조원마저 무너졌다. 외국인들의 순매도 행렬도 이어졌다. 이날 외국인이 4758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면서 13거래일 연속으로 삼성전자를 순매도했다. 9월 이후 외국인은 3거래일을 제외하곤 모두 삼성전자를 순매도한 것이다. 이 기간 순매도액은 약 15조원으로 코스피 전체 순매도(약 13조원)보다 많았다.
인공지능(AI) 열풍이 반도체 시장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의 부진 등 흐름에 제대로 편승하지 못하고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불씨가 됐다. 여기에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라 중장기적으로도 전망이 어둡다는 인식 확산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최근 10여년간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자 불신이 이렇게 심했던 적은 없었다”며 “더 문제인 것은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도 이렇다할 타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총수인 이재용 회장으로부터 아무런 위기 극복 전략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불안감을 더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증권가 일각에서도 삼성전자가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투자자의 민심을 되돌릴 것으로 예측하는 시각이 있었다. 메리츠증권을 비롯해 일부 증권사들은 삼성전자가 주가 부양을 위해 주주환원 정책이나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반등을 노려볼 수 있지만 단기적인 상승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미래의 기업 이익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관건은 오는 12월초로 예정된 사장단 인사와 조직개편에 달려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콘트롤타워인 사업지원TF와 회사의 기둥이나 다름 없는 반도체(DS) 부문에서 변화의 메시지를 확실히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현 상황에서 삼성이 대내외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은 사실”이라며 “단기적인 해법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전략과 비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