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 장비 회사 도쿄일렉트론의 중국 지역 매출 비중이 대폭으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수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장비를 대거 매입했던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설비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도쿄일렉트론의 중국 시장 매출 비중은 올 3분기 41%에서 향후 30%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분기 중국 지역 매출액도 2339억엔(약 2조1000억원)으로 직전 분기(2770억엔) 대비 15%가량 줄었다. 가와모토 히로시 도쿄일렉트론 수석 부사장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수출 규제 강화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도쿄일렉트론은 일본의 대표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매출 기준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점유율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웨이퍼에 막을 입히는 성막장치와 세정장치 등 8개 품목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당초 중국 기업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의 수출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자, 사전에 장비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 러시’를 단행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중국의 설비 투자액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400억달러(약 56조원)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중국의 투자에 힘입어 반도체 장비 업계 실적도 수직 상승했다. 도쿄일렉트론은 올해 예상 연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5% 증가한 5260억엔(4조7883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현지 애널리스트들의 예상치인 4870억엔을 약 10% 상회하는 수치다. 도쿄일렉트론의 연간 매출액도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한 2조4000억엔(21조8481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예상보다 1000억엔가량 상향 조정됐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매출 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한때 50% 가까이 치솟았던 매출 비중은 이번 분기 41%로 낮아졌고, 이후 30%대까지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닛케이는 “가장 큰 우려 사항은 중국”이라며 “중국 반도체 기업이 미국의 수출 규제 강화에 대비해 장비 주문을 늘렸지만, 이제는 장비 증설 단계에 접어들면서 당분간 투자가 둔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에 대한 산업 규제가 강화돼, 도쿄일렉트론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예상도 뒤따른다. 준페이 다나카 일본 픽셋자산운용 전략 담당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것을 보면 중국에 대한 반도체 규제 강화와 미중 무역전쟁의 위험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첨단 반도체 장비기업에 악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중국이 반도체 장비를 대거 매입하면서 매출 비중이 급속도로 높아졌던 것이 정상화되고 있는 흐름“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규제 영향과 중국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 기조로 중국 매출 비중이 지속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도쿄일렉트론은 인공지능(AI) 시장 개화에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첨단 반도체 공정 장비를 중심으로 낮아지고 있는 중국 매출 비중을 상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쿄일렉트론은 실적 발표를 통해 “설비 투자가 일부 지연되고 있지만, AI 서버 제조를 위한 고객사 설비 투자 총액이 전년 대비 50% 늘었다”며 “기술 격차를 위해 5년간 연구개발(R&D)에 1조5000억엔, 설비 투자에 7000억엔 이상 투입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