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중국 시안에 위치한 낸드플래시 공장을 비롯해 다양한 전공정, 후공정 생산라인의 노후 장비 매각 작업을 조만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적절한 시기에 매각을 하지 못하고 쌓아놓기만 했던 장비들을 조만간 중국 현지 기업 또는 제3자를 통해 매각할 것으로 관측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부문(DS) 비용 절감과 생산라인 조정을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골칫거리였던 중국 반도체 생산라인의 노후 장비 매각을 타진하고 있다. 이미 다수 업체들과 논의를 시작한 단계이며, 매각 작업은 내년에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매각 장비는 100단대 3차원(D) 낸드 장비가 대부분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중국 시안 공장의 공정을 200단대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해 왔다.
매년 수십조원 단위의 설비투자를 단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생산라인을 첨단 장비로 교체한 뒤 낡은 장비는 중개업체 등을 통해 외부 기업에 판매해 왔다. 특히 레거시(구형 공정)을 선단 공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장비 매각은 필수적이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구형 공정 장비는 중고 반도체 장비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재활용되는데, 주요 수요처는 중국이다.
하지만 미 상무부가 2022년 10월 중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한 이후 이 같은 매각 작업이 완전히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8나노 공정 이하 D램, 14나노 이하 시스템 반도체 생산 장비·기술, 128단 이상의 낸드플래시 장비는 중국에 수출할 수 없다.
문제는 그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장비들도 판매하지 않아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측은 공식적인 해명을 피했지만, 미 정부로부터 VEU(Validated End User, 검증된 최종 사용자) 지위를 얻기 위해 경영진이 최대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 업계의 해석이다.
VEU는 사전에 승인한 기업에만 지정된 품목의 수출 및 반입을 허용하는 일종의 포괄적 허가 제도다. VEU에 포함되면 미 상무부가 기업과 협의해 지정한 품목은 별도의 허가 절차 및 유효기간 없이 수출을 승인받을 수 있어 미국의 수출통제 규정 적용이 사실상 무기한 유예되는 효과가 있다.
업계 일각에선 여전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전공정, 후공정 장비 판매가 급성장하는 중국 반도체 산업에 단비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와 오랜 기간 협력 관계를 맺어온 도쿄일렉트론(TEL)은 전체 분기 매출이 중국에서 50% 수준에 달할 정도로 레거시 장비를 중국에 대거 판매하고 있다. 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D램 기업인 CXMT가 예상보다 빠르게 구형 공정 D램 시장에서 자리를 잡게 된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협력사의 장비가 중국으로 직접 판매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제3국 중고업체나 유령회사로 매각됐다가 결국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가는 사례는 꾸준히 있었다”며 “미국 정부가 제재 대상으로 정한 장비 역시 일부 ‘어둠의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중국에 반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CXMT, SMIC 등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D램, 파운드리 분야에서 레거시 공정 수율을 끌어올리는데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계속 구형 공정 장비를 방치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난 3분기 실적 부진을 기록한 삼성전자는 올 연말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비용절감에 팔을 걷고 나선 상황이다. 국내 레거시 라인에도 대대적인 가동률 조정과 인력 조정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며 중국 공장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고위 경영진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 공장 장비 매각과 관련해 “해당 사안에 대해 이렇다 할 공식 입장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