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알뜰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달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알뜰폰의 보안 문제, 개인정보 수집 문제 등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는 알뜰폰에 대한 보안 인프라 확충 등 법적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준수하는 사업자를 대상으로만 정책 지원을 진행할 계획이다.
업계는 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대항마 역할을 해오던 알뜰폰의 경쟁력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투자비 증가 등으로 알뜰폰 업체의 부담이 늘어나지만, 정부의 지원은 점차 줄고 있기 때문이다.
◇ 알뜰폰 대포폰·개인정보 문제 지적… 과기정통부, 사업자 의무 강화 검토
22일 업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알뜰폰 업체에 보안 강화 의무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최근 대포폰 개통 등 알뜰폰 관련 문제가 이어지고 있어, 최소한의 여건을 갖춘 업체만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통신사 간 경쟁을 촉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저렴한 요금을 제공하는 알뜰폰 사업자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달 국정감사에서 지적이 이어지자 알뜰폰 규제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8일 진행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대포폰 문제가 알뜰폰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고, 알뜰폰 가입자의 개인정보 취급 관리 시스템이 업체별로 상이하다며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알뜰폰 사업을 진행 중인 KB국민은행이 지난해 10월 가입자의 인터넷 접속정보 6억6000만건을 과도하게 수집했다는 이유로 과태료 120만원과 개선권고 처분을 받아 개인정보 관리에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강도현 과기정통부 차관은 “알뜰폰 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안한 개인정보 관리 체계 등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알뜰폰, 의무 강화 필요하지만 지원도 병행해야”
정부는 최근 비대면 개통 과정에서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알뜰폰 사업자가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고, 정보보호 최고책임자(CISO)를 지정·신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비대면 방식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을 노리고, 타인 명의 등으로 개통하는 등 범법 행위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은 “보안 강화는 알뜰폰 업체들에 비용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휴대폰이 금융거래 등 국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만큼 이에 상응하는 보안 역량을 갖추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했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가입자 개인정보에 대한 보안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정부가 알뜰폰과 통신 3사 간 도매대가(망 사용료) 협상에서 빠지는 등 알뜰폰에 대한 지원이 점차 줄고 있는 상황에서 보안 인프라 조성에 대한 비용 부담까지 늘면 업계가 전반적으로 침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안 인프라를 조성하는 기간에라도 도매대가 절감을 돕는 식으로 유예기간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내년부터 알뜰폰 업체와 통신 3사 간 도매대가 협상에 참여하지 않는다. 기존에는 정부가 협상력이 약한 알뜰폰 업체 대신 통신 3사와 도매대가 협상에 나섰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도매대가가 여전히 비싼 상황인데 정부가 협상에서 빠지게 되면, 경쟁력 있는 요금제를 내놓지 못할 것”이라며 “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도매대가가 더 비싼 5G(5세대 이동통신) 요금제를 늘리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알뜰폰 업체가 통신 3사에 지급하는 5G 도매대가는 월 요금의 60% 수준으로, 40% 수준인 LTE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알뜰폰 시장은 위축되고 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 8월 전체 알뜰폰 가입자는 942만명으로 전월(936만명) 대비 0.54% 증가하는 데 그쳤다. 4월부터 5개월 연속으로 0%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한석현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은 “정부가 추진해 온 전환지원금, 제4 이동통신사 등 통신비 인하 정책이 좌초된 상황에서, 알뜰폰 경쟁력 확보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의무 부여 이전에 시장 전반에 대한 상황을 파악한 뒤, 알뜰폰 업체들이 정보보호 의무를 준수하면서도 수익성까지 높일 수 있게 돕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