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내년부터 본격 양산하는 2나노 공정 생산가격을 3나노 대비 1.5배에서 최대 2배 수준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선단 공정 시장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TSMC는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시장에서 이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격대를 지속적으로 높여왔다.
7일 대만 주요 매체에 따르면 TSMC는 2나노 공정 웨이퍼(반도체 원판) 가격을 장당 3만달러 이상으로 책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최첨단 공정인 3나노가 웨이퍼 장당 1만8000달러~2만달러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을 1.5배에서 최대 2배까지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2나노 칩의 주요 수요처인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스마트폰, PC 등 시장 전반에 걸쳐 ‘IT 인플레이션’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나노 공정이 3나노 공정 대비 성능 향상이 10~15%, 전력효율성 개선은 25~30% 수준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반도체 생산비용이 과도하게 치솟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공정 전환에 따른 성능, 전력 효율성 향상 폭이 온전히 한세대 업그레이드되는 것으로 보기에는 개선도가 크지 않아 ‘옆그레이드’라는 지적도 나온다.
TSMC는 대만 남부 가오슝 난쯔 과학단지에 건설하고 있는 최첨단 2나노 1공장(P1)과 2공장(P2)의 운영을 각각 내년 1분기와 3분기에 시작할 예정이다. 2나노 생산 공정을 갖춘 3공장(P3)의 경우 지난달부터 건설을 시작했다. 2나노 시제품 양산은 이미 돌입했으며, 내년부터 생산될 물량도 주요 고객사들과 계약을 마친 상태다.
TSMC는 지난해 4나노에 이어 올해 파운드리 업계 최대 격전지인 3나노 공정에서도 엔비디아, AMD, 인텔, 퀄컴 등 고객사들의 물량을 따내며 최선단 공정에서 독과점 구도를 완성했다. 유일한 경쟁자인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이 성능, 수율 문제로 시장의 외면을 받자 이익률을 최대화하기 위해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다. 올 3분기 TSMC의 매출총이익률은 54%에 달한다.
국내 대형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2나노 공정 개발 비용이 100만달러 수준이며,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등 일부 신기술이 도입되는 것을 제외하면 3나노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최선단 공정에서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TSMC의 가격 인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른 생산이익률도 60%선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에도 TSMC는 3나노, 5나노 공정 생산비용을 8% 인상한 바 있다. 엔비디아, AMD 등 주문이 몰리면서 가격을 인상하고 나선 것이다. 내년 PC 시장 최대 관심사인 RTX 5090 그래픽카드 제품도 3나노 공정에서 생산될 예정이며, 가격이 그래픽카드 역대 최대 수준인 300만~4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에도 TSMC의 독주가 제품 가격 인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TSMC의 4나노 공정에서 생산된 퀄컴 스냅드래곤8 3세대 칩은 생산비용 인상에 따라 갤럭시S24 울트라 출고가가 전 세대 제품 대비 10만원 가까이 높아지는 데 일조한 바 있다. 모바일 AP는 스마트폰 부품 중 가장 단가가 높은 제품 중 하나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 AI 모델 훈련에 필요한 고성능 칩의 숫자와 전력 비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픈AI 경쟁사인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현재 시장에 출시되는 AI 모델을 훈련하는 데만 약 1억달러(약 1347억)가 필요할 것으로 관측했다. 그는 현재 훈련 중인 모델, 내년 초 출시될 모델 비용은 10억달러(약 1조 3477억원)에 가까우며, 2025년과 2026년에는 최대 100억달러(약 13조4810억원)가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