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미디어텍의 차세대 모바일 AP '디멘시티 9400'./미디어텍 제공

미국 퀄컴과 대만 미디어텍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 양강 구도가 공고해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모바일 AP인 엑시노스 시리즈는 내년에도 갤럭시 스마트폰 시리즈에 탑재가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텍의 차세대 모바일 AP가 예상보다 뛰어난 성능, 합리적인 가격대를 책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전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대만 최대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미디어텍이 이달 발표할 예정인 ‘디멘시티 9400′이 당초 예상보다 뛰어난 성능의 벤치마크 결과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됐다. 퀄컴의 스냅드래곤8 3세대 대비 연산속도는 30% 더 빠르고, 전력모소량은 40%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텍의 디멘시티 9400은 TSMC의 2세대 3나노 공정에서 생산된다.

해외 IT 전문 매체들도 미디어텍의 디멘시티 9400이 앞으로 출시될 퀄컴의 차세대 스마트폰 AP인 퀄컴 스냅드래곤8 4세대와 거의 대등한 수준의 성능을 갖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격대는 퀄컴 스냅드래곤8 4세대의 추정 가격인 200달러보다 20~30% 낮게 책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0년대 중저가용 스마트폰 AP 시장에 주력했던 미디어텍은 2019년 발표한 디멘시티 시리즈를 시작으로 고가 스마트폰용 시장에서 퀄컴에 도전장을 던졌다. 특히 전작인 디멘시티 9300 제품이 업계의 호평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에 출시하는 디멘시티 9400의 경우 퀄컴 스냅드래곤 제품의 성능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의 엑시노스 시리즈와 퀄컴 스냅드래곤 시리즈를 혼용해 온 삼성전자 MX사업부의 방침에도 변화의 조짐이 관측된다. 지난 수년간 엑시노스 시리즈는 퀄컴 스냅드래곤에 성능, 발열, 전력 소모 등 주요 지표에서 밀리기 시작하며 갤럭시 스마트폰 플래그십 모델에 제품을 공급하지 못했다. 현재 삼성 갤럭시S24 고급 모델에는 전량 스냅드래곤이 탑재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에 나올 갤럭시S25 역시 퀄컴이 물량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뿐만 아니라 MX사업부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엑시노스 시리즈가 부진을 거듭하면서 엑시노스 대비 가격이 최소 50% 이상 높은 퀄컴 스냅드래곤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고 AP 구매비용도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회사의 지난해 전체 모바일 AP 구매비용은 11조7320억원으로 2022년(11조3790억원), 2021년(7조6295억원)에 비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3년 새 모바일 AP 구매 비용만 53.8% 증가한 셈이다. 삼성전자의 전체 원자재 구입 비용에서 모바일 AP 구매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도 2021년 7.4%, 2022년 10.1%, 지난해 11.7%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엑시노스가 갤럭시 시리즈 플래그십 모델에 거의 탑재되지 않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실상 대안이 퀄컴 스냅드래곤뿐이라는 것을 퀄컴 역시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두 회사의 가격 협상에서 삼성이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모바일 AP 가격이 2022년 대비 약 30% 높아지는 등 글로벌 반도체 가격 변동도 삼성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MX사업부도 다양한 비용 절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 MX사업부가 퀄컴뿐만 아니라 미디어텍의 AP를 갤럭시 시리즈에 탑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미디어텍 칩의 성능이 퀄컴과 거의 대등한 수준에 오른 반면 가격은 20~30%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최근 출시한 갤럭시탭S10 시리즈에 처음으로 미디어텍의 ‘디멘시티 9300′ 탑재를 결정한 바 있다.

삼성전자 MX사업부가 사실상 유일한 고객사나 다름없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입장에서는 벼랑 끝에 놓인 상황이다. 기대작이었던 엑시노스 2500 AP를 내년 상반기 출시되는 갤럭시S25에 탑재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사실상 계획이 틀어지면서 하반기 갤럭시 폴드·플립7(가칭)에 공급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