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SMIC 공장 내부 모습. /SMIC 제공

일본이 미국의 대중 반도체 산업 추가 규제에 동참할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일렉트론(TEL) 등 일본 반도체 장비 기업의 첨단 제품 수출뿐만 아니라 장비 유지·보수 등 서비스 제공도 제한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제재가 지속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매출 비중이 50%에 육박한 도쿄일렉트론의 실적도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9일 파이낸셜타임스(FT) 및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의 대중 반도체 제재가 합의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일본의 합의로 이르면 연내 도쿄일렉트론의 중국 수출 및 서비스 제공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FT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일본이 협의 중인 규제는) 중국이 반도체 제조 장비에 접근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기 위한 것이며, 일본의 도쿄일렉트론과 같은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산업 규제로 도쿄일렉트론이 중국 기업에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장비 유지 보수 등의 서비스 제공도 제한될 전망이다. 현재 네덜란드 ASML은 극자외선(EUV) 및 심자외선(DUV) 노광 장비 수출은 물론 관련 서비스 중단도 검토 중이다.

도쿄일렉트론은 일본을 대표하는 반도체 장비 기업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도쿄일렉트론의 매출액 기준 시장 점유율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네덜란드 ASML, 미국 램리서치에 이어 세계 4위다. 극자외선(EUV) 및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에 매출이 집중된 ASML과 달리 도쿄일렉트론은 반도체 공정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장비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웨이퍼에 막을 입히는 성막장치와 세정장치 등 8개 품목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반도체 산업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것이 통제 강화의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 경제·혁신 정책 싱크탱크인 정보혁신재단(ITIF)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분야 기술력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비교할 때 3~5년 정도 뒤처진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는 2년 정도로 빠르게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다.

중국 레거시(구공정) 반도체 산업에 대한 통제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규제로 첨단 반도체 산업 투자에 제약이 생긴 중국은 레거시 반도체 시장 선점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중국 기업의 레거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40%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일렉트론의 반도체 장비는 첨단 반도체 제조뿐만 아니라 반도체 세정 등 레거시 반도체 제조 공정에도 대거 투입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레거시 반도체를 통제하지 못하면 기술의 근본적인 기반 전체를 통제할 수 없게 된다”고 보도했다.

강성철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반도체 소재부품 대학원 교수는 “램리서치와 어플라이드, ASML에 이어 일본 도쿄일렉트론까지 규제에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력 향상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라며 “도쿄일렉트론의 경우 레거시 반도체 제조용으로도 많이 투입되고 있어 관련 분야로 규제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한편, 미국의 규제로 도쿄일렉트론 매출에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된다. 도쿄일렉트론 전체 매출액의 50%가량이 중국에서 발생한다. 중국 기업들의 미국 수출 규제 확대 우려에 제재 대상에서 제외된 도쿄일렉트론의 반도체 장비를 대거 매입하며 매출 비중이 지속 상승했다. 올해 일본 회계연도 1분기(4~6월) 기준 도쿄일렉트론 전체 매출에서 중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9.9%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39.3%)과 비교할 때 10%포인트(P)가량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