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삼성전기 본사 전경./조선DB

삼성전기가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가동률을 90%대로 끌어올리고 있는 가운데, 판매 가격은 좀처럼 오를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애플의 신제품 출시와 인공지능(AI) 시장 개화로 전체 공급량은 탄력을 받았지만, 업체간 가격 경쟁이 심화된 영향이다. 지난해 삼성전기 실적의 발목을 잡았던 MLCC 판매 가격이 상승세에 접어들지 못하며 수익성 개선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3분기 삼성전기 MLCC 평균 가동률이 90%대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 IT 수요 침체에 삼성전기 MLCC 가동률은 이번 분기 대비 20%포인트(P)가량 낮은 70% 수준이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영향으로 가동률이 상승하기 시작하며 지난 상반기(1~6월)에는 85%를 기록했다.

지난 9일(현지시각) 삼성전기 MLCC 주요 고객사 중 하나인 애플이 아이폰 16 시리즈를 전격 출시하며 3분기 가동률 상승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삼성전기는 “본격 성수기로 진입하는 3분기에는 해외 전략 거래선의 스마트폰 신모델 출시로 전 분기 대비 출하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에도 애플 아이폰 15 시리즈 출시와 맞물려 하반기 64%였던 삼성전기 MLCC 가동률이 3분기 70%까지 오른 바 있다.

AI 서버와 AI PC 등 AI 관련 제품에 MLCC 채용량이 확대된 것도 가동률 상승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MLCC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일본 무라타도 실적 발표를 통해 AI 서버에서 MLCC 탑재량이 최대 10배, 용량은 4배 이상 적용된다고 밝혔다. AI PC도 메모리 증가뿐만 아니라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신경망처리장치(NPU)의 전력 소모량이 크게 늘어 MLCC의 채용량이 기존 PC 대비 10% 이상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지난해 크게 떨어졌던 판매 가격이 오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IT 수요 부진과 맞물려 삼성전기 MLCC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삼성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기 MLCC 평균 판매 가격은 전년 대비 19.6% 내려갔다. 올해 상반기 가동률 상승에도 판매 가격은 전년 대비 0.2%밖에 오르지 않았다.

수요 부진뿐만 아니라 지속된 엔저 현상에 경쟁사인 무라타와 TDK 등 일본 기업들과의 가격 경쟁이 심화되며 판매 가격을 끌어내렸다. 주력 사업의 수익성 악화에 지난해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1조1828억원) 대비 45%가량 줄었든 6394억원을 기록했다.

공급 물량이 늘고 있는 AI 시장과 달리, 매출 비중이 높은 PC 등 IT 시장 수요 회복세가 예상 대비 저조해 삼성전기 MLCC 판매 가격은 당분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AI를 중심으로 채용량이 늘어 공급 물량이 확대되고 있지만 전체 공급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 전반적인 IT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있어 MLCC 가격 상승에 대한 고객사의 저항이 있는 상황”이라며 “전자부품업계 특성상 한 번 떨어진 가격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고, 공급 경쟁도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기 전체 매출액 중에서 MLCC를 생산하는 컴포넌트사업부의 매출액이 지난해 기준 43%에 달하는 만큼 수익성 제고를 위한 판매 가격 인상이 절실하지만, 내년 하반기까지는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이규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MLCC 가격 인상이 당초 내년 상반기부터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내년 하반기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PC 수요 회복이 지연되고 있어 내년도 영업이익 전망도 1조3040억원에서 1조82억원으로 17%가량 하향 조정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