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전영현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장(부회장)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 대체로 긍정적이다. 글로벌 반도체 업황이 반등하기 시작하며 지난 2분기 양호한 실적을 견인한 가운데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분야에 인재를 몰아주고, 성과를 내지 못한 부서는 해체하는 등 삼성 반도체의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깔아나가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전 부회장은 취임 후 100일간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사업 경쟁력의 ‘본진’이나 다름 없는 D램 사업 조직을 재정비하고, 실책을 범하던 조직 내 프로세스 문제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서버용 D램 시장 격전지였던 DDR5 D램의 인텔 인증이 늦춰지면서 초기 시장을 SK하이닉스에 내준 바 있다.
과거 삼성전자 D램 사업을 주도했던 전 부회장이 부임한 이후 D램 사업 조직은 다시 철저한 원칙과 검증 프로세스를 통해 과거의 경쟁력을 회복해 나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전 부회장이 임직원들에게 강조하는 원칙은 단순하다.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기본은 말 그대로 핵심 기술력이다.
고객사와의 관계 역시 신뢰 회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기반을 닦아나가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부의 경우 선단 공정에서 삼성전자가 고객사에 제시했던 칩 제조 사양, 수율 등 많은 문제를 드러냈지만, 최근에는 더 신중한 기조로 돌아섰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선단 공정뿐만 아니라 레거시(구공정) 영역에서 차근차근 기초를 쌓아올리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의 효율적인 연구개발, 사업성과를 위한 조직개편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 부회장은 지난 7월 초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우선 SK하이닉스에 밀린 HBM(고대역폭메모리) D램 경쟁력 강화를 위해 HBM개발팀을 신설했다. D램 개발 부서에 흩어져 있던 HBM 인력을 한군데로 모아 차기 제품인 HBM4(6세대) D램 성능과 수율을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이달에도 소규모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부문장 직속이었던 AVP(첨단패키징)개발팀을 해체하고 관련 인력을 TSP(테스트&시스템패키지)총괄로 이전했다. 메모리 반도체 결합을 맡던 TSP총괄과 이종 반도체(시스템+메모리) 결합을 맡던 AVP개발팀을 합쳐서 삼성전자의 후공정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물론 풀어야 할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SK하이닉스 대비 열세인 HBM의 경우 전 부회장이 DS부문장으로 취임한 이후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다. 업계의 최대 관심사인 엔비디아 HBM3E(5세대) D램 퀄테스트(품질검증) 통과도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다만 엔비디아가 중국용 인공지능(AI) 칩에 활용하기 위해 삼성전자 HBM3(4세대) D램을 공급받기 시작한 것을 두고 HBM3E의 퀄테스트 통과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조 리스크도 풀어야 할 중대 과제 중 하나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 조합원은 지난 23일 기준으로 3만6616명까지 늘었다. 전삼노 구성원이 대부분 DS부문 소속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업에 차질을 일으키겠다는 강경한 입장은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다. 전 부회장은 지난달 1일 전삼노 총파업을 막기 위해 직접 노조 집행부를 만났지만 큰 소득을 얻진 못했다.
다만 전삼노 조합원 중 실제로 파업에 가담하거나 시위에 참여하는 인원이 적다는 점은 삼성전자 입장에선 고무적이다. 삼성전자 측에서는 3만6000여명의 노조원 중 노조 운영에 필요한 금전적 지원을 한 직원 수는 1300여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또 올해부터 영업이익과 성과급이 정상궤도로 돌아설 경우 전삼노의 주장도 자연스럽게 수그러들 것이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 부회장은 과도한 업적주의나 요란한 대외 행보보다는 묵묵하게 내실을 다지는 것을 선호하는 경영자”라며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도저’에 비유될 정도로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리더이지만 인간적이고, 스마트한 업무 방식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