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정 미세화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어, 곧 반도체 트랜지스터를 3차원(D) 형태로 적층하는 기술이 상용화될 것입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차세대 원자층증착(ALD) 장비로 3D 반도체 시대를 이끌어 가겠습니다. 다가올 미래에는 미세 회로를 그리는 데 쓰이는 극자외선(EUV) 공정보다 트랜지스터를 적층하는 ALD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29일 경기도 용인 주성 연구개발(R&D)센터에서 조선비즈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해 세계 최초로 D램 커패시터용 ALD 장비 개발을 주도한 황 회장은 현재까지도 회사를 이끌고 있다.
ALD는 반도체 원판(웨이퍼) 표면의 특정 영역에만 얇은 막을 화학적으로 증착하는 기술이다. 기존 증착 기술과 비교해 막질을 더욱 얇게 형성할 수 있다. 현재 20㎚(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양산뿐만 아니라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중앙처리장치(CPU) 등 첨단 로직 공정에서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 장비 국산화의 원조격 기업으로 통한다. 국산 반도체 장비가 자체가 희귀했던 지난 1997년 국내 기업 최초로 반도체 전공정 장비를 수출했다. 1998년에는 세계 최초로 D램 커패시터용 ALD 장비 양산에 성공했다. 황 회장은 “과거에는 선진 기업들의 장비를 모방하는 것이 국내 장비 기업 기술의 대부분이었다”며 “하지만 주성엔지니어링은 메모리 반도체에 최적화된 ALD 장비를 가장 먼저 개발해 SK하이닉스 등 고객사가 D램 양산 기술력을 제고하는 데 일조했다”고 했다.
1세대 장비기업인 주성엔지니어링은 국내 대표 반도체 장비사로 평가받지만,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형 납품처와의 거래가 중단이 되기도 했고, 중국 태양광 기업이 대금을 주지 않아 1000억이 넘는 돈을 순손실 처리하면서 막대한 적자를 떠안게 되는 등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황 회장은 “위기에 처했어도, 주성엔지니어링의 기술력을 의심한 적은 없다”며 “최초로 개발한 기술과 장비가 시장에 반드시 필요할 것이란 믿음으로 버텼다”고 했다.
위기 속에서도 늘 재기에 성공한 주성엔지니어링은 3-5족 화합물용 ALD 장비와 같은 차세대 장비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노리고 있다. 황 회장은 “3-5족 화합물 반도체는 실리콘 대신 주기율표상 3족과 5족에 해당하는 원소를 결합한 것이다. 물질 특성상 공정을 미세화하지 않아도 전자 이동속도도 빠르고 성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전력 소모도 적다”며 “기존 대비 10배, 100배 이상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공정으로 3D로 적층되는 반도체에 최적화된 장비”라고 했다. 다음은 황 회장과의 일문일답.
—반도체 공정 미세화가 한계에 직면하면서, 대대적인 변화가 따르고 있는데. 주성엔지니어링은 어떻게 이를 대비하고 있는지.
“이전까지 반도체 공정은 100평 규모의 땅에 몇 개의 집을 지을 수 있느냐 싸움이었다. 이제는 이런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고 복층으로 집을 쌓아 올리는 기술 개발 경쟁이 시작됐다. 반도체가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양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실리콘을 대체해 공정에 혁신을 가져오고, 반도체 성능까지 개선할 수 있는 3-5족 화합물 반도체가 필요한 이유다.
주성엔지니어링은 20년 동안 3-5족 화합물을 적용할 수 있는 ALD 장비를 연구했고, 마침내 개발을 마쳤다. 기존 기판 위에서 1000도 이상 고온 공정에서만 구현이 가능했던 ‘3-5족 화합물 반도체’를 400도 이하 얇은 유리기판 위에서 양산할 수 있는 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현재는 메모리 반도체용 ALD 사업 비중이 높다.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한 시장 전략은.
“현재 파운드리(위탁 생산) 로직 공정용 ALD 장비와 관련해 납품을 시작했다. 공급량은 점차 늘어날 것이다. 3-5족 화합물용 ALD도 로직 공정에서 제일 먼저 상용화될 것이라고 본다. 3년 내 양산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로직은 D램과 다르게 순수하게 트랜지스터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AI 시장이 개화하며 데이터 연산 처리량도 급증하고 있는데, 트랜지스터 숫자도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트랜지스터를 3D로 적층하는 공정이 로직에서 가장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되고, 그런 이유로 주성엔지니어링의 장비가 도입될 것이라고 본다. 현재 데모를 진행한 곳도 있고, 시장 반응은 긍정적이다. ”
—최근 진행한 인적·물적 분할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2세 경영을 위한 발판이란 의견도 있는데.
“이번 분할은 회사의 운명을 걸고 진행한 것이다. 미국이 반도체를 무기로 중국에 규제를 가하면서 반도체 기업들이 겪는 위기의식이 날로 커지고 있다.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납품하는 주성엔지니어링 입장에서는 언제 미국의 규제를 받아 회사가 타격을 입을지 알 수 없다. 때문에 반도체에 집중하는 기업과 태양광·디스플레이를 담당하는 회사를 분리해 리스크를 분산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2세 경영과 관련해 어떤 계획도 없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2세 경영 자체가 목적이 될 수가 없다. 성장하지 못하는 회사를 물려주려고 하는 부모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주성엔지니어링의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美·中 반도체 패권 경쟁이 매섭다. 주성엔지니어링도 영향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있다.
“주성엔지니어링도 영향을 장기적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본다. 반도체가 국가간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미국이 중국을 규제하기 위해 ASML과 도쿄일렉트론(TEL) 등을 강하게 압박하는 과정을 보면, 이전과 다르게 자유 무역이란 개념도 희미해지는 것 같다. 주성엔지니어링과 같은 개별 기업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뚜렷한 대비책은 없다. 우리 정부에서 정치적으로 잘 풀어나가길 기대하는 것 뿐이다. 단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고객사를 다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소부장 생태계가 열악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라고 하지만, 제조 과정을 들여다보면 외산 장비 일색이다. 외국 장비가 없으면 첨단 공정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진정 글로벌 1위라고 자부하기 위해서는 설계뿐만 아니라 제조 과정에 필요한 기술력도 선두 자리에 있어야 한다. 국내 장비 기업이 조직이나 자본, 기술력이 글로벌 기업 대비 미흡하다는 인식이 있어 차세대 공정 로드맵을 설계하는 과정에 함께하지 못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이제는 반도체 기술이 국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국산화율을 단순히 수치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ASML처럼 전 세계 유일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을 집중 육성해 다른 국가에서 기술을 무기화해도 대응할 수 있는 독보적 기술을 갖춘 기업이 탄생해야 한다. 자유 무역 시대가 저물고 있어, 특정 국가가 언제 어떻게 필수 장비나 소재 공급을 중단할 지 알 수 없다. 과거 한·일 관계가 악화되며 일본이 소재 수출을 제한해 난감했던 과거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