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자외선(EUV) 공정의 핵심 부품으로 이물질로부터 포토마스크를 보호하는 펠리클 시장 세계 1위 일본 미쓰이화학의 독주 체제가 굳어질 전망이다. 미쓰이화학은 세계 최대 반도체 연구소 벨기에 아이멕과 손잡고 차세대 ‘탄소나노튜브(CNT) 펠리클’을 개발해 양산한다는 방침이다. CNT 펠리클은 기존 EUV 공정뿐만 아니라, 차세대 EUV 공정인 ‘하이(High) 뉴메리컬어퍼처(NA) EUV’에도 최적화된 펠리클이다. 미쓰이화학이 EUV 펠리클에 이어 하이 NA 펠리클 시장 선점에 나서며, EUV 펠리클 국산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부품사들과의 기술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14일 미쓰이화학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공장에 CNT 펠리클 생산 시설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연간 5000개의 펠리클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내년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CNT 펠리클은 기존 실리콘 소재 EUV 펠리클보다 내구성이 뛰어나, 기존 EUV 공정보다 출력 강도가 높은 하이-NA EUV 공정에도 최적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EUV 핵심 부품 펠리클… 日 미쓰이화학 독점
펠리클은 EUV 공정에서 회로를 새겨넣는 판인 포토마스크를 이물질로부터 보호하는 덮개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EUV 장비의 빛이 미러(거울)에 반사돼 웨이퍼에 닿는 과정에서 먼지로 인한 마스크 손상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이를 담당하는 것이 펠리클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EUV 펠리클 시장은 현재 미쓰이화학이 독점하고 있다.
EUV 공정 도입이 본격화되며, EUV 펠리클의 중요성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EUV 공정은 반도체 생산 과정의 핵심으로 꼽히는 노광 공정을 EUV로 고도화한 것이다. 극자외선을 이용해 반도체의 원재료인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그리는데, 기존 불화아르곤(ArF, 193㎚)노광 공정 대비 생산 효율을 최대 4배 가까이 높일 수 있어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최선단 파운드리 필수 공정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메모리 반도체 제조 과정에도 EUV 공정이 적용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EUV 10㎚대 초반으로 회로 폭이 좁아지는 5세대(1b) 이후 D램 생산에 필수로 투입하고 있다. EUV 장비를 D램 공정에 적용해 복잡한 생산 단계를 줄이고 공정을 효율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EUV 공정 도입 확대와 맞물려 EUV 펠리클 수요도 늘었다. 미쓰이화학은 지난해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작년 EUV 펠리클 매출액이 전년 대비 30%가량 늘었다고 밝히며, 올해도 50% 이상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미쓰이화학의 펠리클 사업을 담당하는 ICT 사업부문 매출액은 2375억엔(약 2조733억원) 수준이다.
◇ “韓 부품사 위기감 느낄 것”
EUV 펠리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미쓰이화학은 하이 NA EUV 시장에서도 독주를 이어갈 전망이다. 미쓰이화학은 네덜란드 ASML로부터 세계 최초로 하이 NA EUV 장비를 인수한 아이멕과 손잡고 CNT 펠리클을 개발했다. 차세대 EUV 공정인 하이 NA EUV는 향후 2㎚ 미만 첨단 파운드리 공정 및 10㎚ 이하 D램에 적용될 예정이다.
CNT 펠리클은 기존 펠리클 대비 내구성이 2배 강해 차후 도입될 하이 NA EUV 공정에 최적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EUV 펠리클은 EUV 노광 장비 출력인 300~400와트(W)를 감당하면 됐지만, 하이 NA EUV 장비는 출력이 높아 600W 이상 내구성을 갖춘 펠리클이 필요하다.
EUV 펠리클과 더불어 하이 NA 펠리클마저도 전량 일본 기업에 의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미쓰이화학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EUV 펠리클 개발에 나선 에프에스티와 에스앤에스텍은 개발을 선언한 지 약 5년이 지났지만 아직 납품에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두 기업은 자체 개발한 EUV 펠리클의 품질을 고객사와 함께 검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펠리클 수급을 미쓰이화학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라며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국산화가 시급하지만 미쓰이화학과 기술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 EUV 펠리클 개발에 나서고 있는 국내 부품 기업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