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에 유럽 여행을 가는데, 유심칩을 구입하기가 귀찮아. 괜찮은 요금제 추천해줘.”(일본 NTT도코모 고객)
“유러피언 로밍패스는 어때. 20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를 주고 무제한 음성통화가 가능해.”(일본 NTT도코모의 AI 챗봇 ‘쓰즈미’)
글로벌 이동통신 회사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개발하거나 이를 기반으로 한 AI 비서로 고객 서비스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국내 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들도 이런 흐름을 쫓아가고 있지만, 연구개발(R&D) 투자에 소극적이고 관련 인재 확보 등에서 열세라는 지적이 나온다.
◇ 日·英·中 통신사, AI 서비스 본격화
28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NTT도코모는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자체 개발한 대규모언어모델(LLM) ‘쓰즈미(Tsuzumi)’를 지난 3월 공개했다. GPT-3.5에서 최근 GPT-4 수준으로 성능 개선을 준비 중이다. NTT는 쓰즈미를 파라미터(매개변수)가 70억개인 ‘경량판’과 6억개인 ‘초경량판’ 2개 모델로 선보였다. 파라미터 수가 적어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비용을 줄였다. NTT도코모 관계자는 “GPT-3.5는 일반 클라우드를 이용해 3000억 토큰 데이터를 학습하는데 약 4억7000만엔(약 40억원)이 소모되나 ‘쓰즈미’는 데이터 학습에 소모되는 비용이 160만~1900만엔(약 1400만~1억6500만원)에 불과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쓰즈미가 연구개발 비용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자체 연구소에서 축적한 40년 이상의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쓰즈미는 콜센터와 AI 가상인간 기반의 컨시어지 서비스를 포함하는 ‘고객응대(CX) 솔루션’, 회의록 작성 등 임직원 업무를 돕는 ‘임직원경험(EX) 솔루션’, 사이버보안 등을 고도화하는 ‘정보기술(IT) 운영 지원 솔루션’에 활용되고 있다.
영국 통신사인 보다폰은 글로벌 컨설팅 업체 액센츄어와 협력해 지난 3월 생성형 AI 챗봇을 출시했다. 25세 이하 청년 전용 브랜드 ‘복시(Voxi)’ 고객이 사용할 수 있으며, 실제 상담원과 대화하듯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게 강점이다. 보다폰 측은 “이 기술을 이용하면 고객은 더이상 추가 검색을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며, 정확하고 빠른 답변이 가능해 고객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 차이나텔레콤은 지난해 11월 100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LLM ‘씽첸(XINGCHEN)’을 공개했다. 차이나텔레콤 측은 “소프트웨어 분석, 비즈니스 제안서 작성 등에 씽첸을 활용 중”이라며 “더 많은 사용자가 AI 성능 개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광범위하게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 전국적으로 100만명 이상의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 韓 통신 3사, AI 시대에도 투자는 ‘소극적’
SK텔레콤은 오는 6월 통신 플랫폼에 특화한 맞춤형 텔코 LLM 서비스를 출시한다. 텔코 LLM은 GPT·클로드와 같은 범용 LLM이 아니라 통신업에 특화한 LLM이다. 통신 요금제 종류, 공시지원금·선택약정 등 통신 전문 용어, AI 윤리 등을 집중적으로 학습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은 이미 자체 LLM ‘에이닷엑스’ 기반의 AI 비서 서비스 ‘에이닷’을 상용화했다.
KT는 지난해 10월 AI 챗봇 ’믿음(Mi:dm)’을 공개하고 경량부터 초대형까지 4종 모델로 구분해 출시했다. 기업 규모와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 사용한 만큼 비용이 부과되는 방식이다. 기업간거래(B2B) 시장에서 향후 3년 내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LG유플러스도 자체 개발 ‘익시젠’을 기반으로 고객 상담, 임직원 업무, 스마트폰과 IPTV(인터넷TV) 이용에 특화한 각종 비서 서비스를 순차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하지만 국내 통신사들이 선보이는 서비스들이 어느 정도 완성도를 보일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수준 높은 AI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올 1분기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AI 사업 투자 비용은 각각 987억원, 1905억원, 749억원으로 전년 대비 2~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통신은 거의 인프라에 가까운 서비스이다 보니, 원천 연구에 관심이 많은 유능한 인재에게는 매력적인 업종으로 보여지지 않을 수 있다”면서 “LLM 분야에서 사용자 데이터 연구가 중요한데, 통신데이터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AI 분야는 조단위 투자를 해야 하는데,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다 보니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AI 챗봇 서비스를 도입할 때 다양한 제안을 해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정확하게 하나의 답이 나오는 질문일 경우 사업적 리스크도 있다”면서 “고객 응대시 정확도가 떨어지는 경우 해외에서는 고객이 AI 상담원과 나눈 대화를 녹취해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