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서울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이 AI 주요 3개국(G3)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할 것입니다.”

대통령실은 이달 21~22일 서울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서울 정상회의’와 관련해 이 같은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번 행사는 지난해 11월 영국 블레츨리 파크에서 28개국 대표, 기업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AI 안전성 정상회의’의 후속 회의입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포부가 무색할 정도로 정상회의를 앞두고 준비가 미비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전 세계적으로 AI를 선도하는 국가 반열에 오르지 못했고, 정책적 움직임과 관련 논의도 부족해 주도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입니다.

AI 산업은 정부 지원과 민간의 투자가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소(HAI)가 지난달 발표한 ‘AI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AI 민간 투자액이 13억9000만달러(약 1조8937억원)로 세계 9위에 머물렀습니다. 1위 미국은 한국보다 48배 이상 많은 672억2000만달러(91조5939억원)를 지난해 AI에 투자했습니다. 2위 중국(77억6000만달러), 3위 영국(37억8000만달러), 4위 독일(19억1000만달러), 5위 스웨덴(18억9000만달러), 6위 프랑스(16억9000만달러), 7위 캐나다(16억1000만달러)로 집계됐습니다. 한국(13억9000만달러)은 8위를 차지한 이스라엘(15억2000만달러) 보다도 뒤였습니다.

그래픽=손민균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누계로 살펴봐도 민간의 AI 투자 금액이 한국은 72억5000만달러(9조8716억원)로 세계 9위 수준입니다. 미국(3352억4000만달러)과 중국(1036억5000만달러)과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이스라엘(128억3000만달러)에도 한참 못 미칩니다.

민간 투자의 온도 차는 대표적인 빅테크들의 움직임만 봐도 확연히 느껴집니다. 일례로 챗GPT를 만든 오픈AI가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140억달러(19조666억원)의 투자를 받은 것입니다. 아마존은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에 지난해 9월 12억5000만달러(1조7020억원)를 투자한 데 이어 최근에는 추가로 27억5000만달러(3조7444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한국 기업들도 AI에 대한 투자를 활발히 하고 있다고 하지만 빅테크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입니다. 국내에서 AI 산업을 이끄는 대표적인 기업 네이버는 최근 5년간 AI에 1조원을 투자해 지난해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X를 선보였습니다.

투자야 자본력의 한계가 있다고 해도 정책적 움직임 역시 지지부진한 것은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AI 산업을 진흥하고 AI 이용자인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AI 기본법’이 이달 말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AI 기본법은 지난해 초 발의된 뒤 1년 넘게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었으나, 여야가 마지막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이죠.

유럽연합(EU) 입법기관인 유럽의회는 지난 3월 AI 개발 기업이 지켜야 할 의무 등을 규정한 포괄적 규제법을 세계 최초로 마련했습니다. 미국은 지난 2020년 ‘국가 AI 이니셔티브법’을 제정했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AI 윤리 거버넌스’ 지침을 세웠으며 일본은 히로시마 AI 프로세스를 통해 국제 규범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김진형 카이스트 전산학부 명예교수는 “아직 AI 기본법이 만들어지지 않아 민간에서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의 범위를 알아야 하루빨리 큰 투자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AI 정상회의 개최가 국가적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는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민간과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인 게 현실입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부 교수는 “AI 기본법이 마련돼 있었으면 명분이나 글로벌 AI 리더십 측면에서도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AI 산업을 주도하지 않는 상황에서 준비가 미비하다 보니 AI 정상회의가 흥행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며 “말로만 ‘G3으로의 도약’, ‘글로벌 차원의 AI 규범·거버넌스 전진’ 계기를 외칠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한국이 AI 혁신을 이끌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