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국내·외 로펌에서 일했던 한상우(50) 위즈돔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 경기 용인시에서 서울 선릉까지 출·퇴근을 했다. 그는 자신과 매일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수십 명에 달하며, 이들이 출퇴근 전쟁을 치르는 걸 보면서 좀 더 편안하게 오갈 수 없는지 고민했다.

한 대표는 온라인에서 같은 동선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모아 출근 시간대에 전세버스를 배차하면 편리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를 사업화하기 위해 2009년 초·중·고 동창들과 스마트 버스 플랫폼 위즈돔을 창업했다. 위즈돔은 2010년 출퇴근 시각과 직장 위치 등이 비슷한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모집해 노선별 전세버스를 제공하는 ‘e-버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불법 시비에 휘말리면서 1년도 안 돼 사업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관련법 상 통근버스 운영은 해당 기업만 할 수 있었는데, e-버스와 비슷한 유형의 사업모델이 불법이 아니라는 2009년 대법원 판례를 찾아내 정부에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이를 통해 2011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을 이끌어냈고, 2013년 정부로부터 노선면허를 받은 모빌리티 기업 1호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손민균

◇ 170여개 주요 그룹·산업단지 통근버스 운영… 노선 설계에 AI 도입

위즈돔에 날개를 달아준 건 SK그룹이다. 설립 2년 만인 지난 2011년 SK그룹이 자사를 위한 통근버스 운영을 위즈돔에 의뢰한 것이다. 위즈돔은 SK그룹 구성원들의 집 주소, 직장주소, 이동시간 등을 데이터베이스(DB)화해 유사성이 높은 사람을 묶어 통근버스 노선을 설계했다.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한화·CJ· 카카오그룹 등 현재 170여개 주요 그룹사와 산업단지의 통근버스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위즈돔은 대기업 통근버스 운영으로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해지자 ‘아이보스(AIBOS)’라는 통합 관제 시스템을 개발했다. 아이보스는 버스 관제·관리·운영 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형태라 수요처 요구에 맞게 애플리케이션(앱)을 제작할 수 있다. 버스기사 입장에서는 아이보스 기반 기사 전용 앱으로 배차, 정산 등의 업무를 한번에 처리할 수 있다.

한 대표는 “기존 통근버스는 회사가 임의로 노선을 설계하고 정류장을 정해줬지만, 위즈돔이 운영하는 기업의 통근버스는 직원들의 수요를 기반으로 버스가 움직인다”면서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회사 앞까지 데려다주니 임원으로 승진한 뒤에도 회사에서 제공하는 법인 차량보다 기존에 타던 통근버스를 계속 이용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통근버스 승객들은 앱을 통해 자신이 탈 버스를 미리 예약할 수 있다.

위즈돔의 노선은 인공지능(AI)으로 똑똑해지고 있다. AI가 한 달에 수백만 건에 달하는 승객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노선을 설계하는 것이다. 예컨대 위즈돔은 현재 인천공항 심야 및 통근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AI를 통해 출·입국을 위해 인천공항을 오가는 사람들과 상주 근로자들의 데이터를 분류해 승객 특성에 적합한 노선을 만든다. AI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노선에서 교정할 부분을 찾아낸다.

위즈돔은 현재 아이보스 시스템을 기반으로 매일 3300개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월 평균 운행은 11만건, 탑승은 180만건, 순 이용자는 10만명에 달한다. 통근버스로 덩치를 키운 위즈돔은 공공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지난 2017년 ‘미리(MiRi)’라는 ‘경기도 광역버스 좌석예약앱’을 개발한 게 대표적이다. 승객은 미리 앱으로 자신이 이용하는 날짜와 시간의 버스 좌석을 예약하고 선결제를 한 뒤 도착시각에 맞춰 정류장에 나가면 된다. 가격은 일반 광역버스와 차이가 없다.

‘아이보스(AIBOS)’ 기반 경기도 광역버스 좌석예약앱 ‘미리(MiRi)’ 이미지./위즈돔 제공

◇ 수퍼앱·외국인 관광객 공략… “3년 내 매출 10배 성장 목표”

위즈돔은 ‘수퍼앱’으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시작은 아이보스 기반 기사 전용 앱 ‘미쓰고’다. 기존 고객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기사들이 한 앱에서 타이어교체, 정비, 주차, 주유는 물론이고 차량 할부, 보험 등 버스 운행·운영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구상이다. 한 대표는 “메신저 서비스이던 카카오톡이 선물하기 등의 수익모델을 붙였듯, 위즈돔도 버스 사업을 기반으로 서비스 확장을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바운드(Inbound·외국인의 국내 여행) 시장도 위즈돔이 공략하는 분야다. 한 대표는 “최근엔 그룹 관광객 비중보다 개인 관광객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며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장소를 중심으로 버스 노선을 계획해 일하는 버스에서 놀러가는 버스로 도약하고자 한다”고 했다. 위즈돔은 평창동계올림픽, 자라섬재즈페스티벌 등 대형 이벤트에서 버스 운영 경험을 갖고 있다.

위즈돔은 이 같은 신사업을 통해 오는 2027년까지 10배 이상의 매출 성장을 이뤄낼 계획이다. 위즈돔은 지난해 설립 이후 최대 규모인 75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코로나19 시절 적자로 돌아섰던 영업이익도 2022년 흑자로 전환한 이후 지난해 10억원 수준까지 늘었다. 한 대표는 현재 추진 중인 신사업이 정착해 버스 운행 및 관제 대수가 늘어나면 내년까지 2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위즈돔은 여느 스타트업들과 달리 외부 투자금이 없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한 대형 자산운영사로부터 250억원을 투자 받았다가 회수 당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한 대표는 “투자 받은 금액의 절반은 버스 매입 등에 썼고, 나머지는 어느 곳에 써야할지 몰라 안 썼다”면서 “투자사의 사정으로 코로나19 시절 투자금을 돌려줘야 했는데, 안 쓰고 있던 돈이 어느 정도 불어난 데다 투자금으로 사뒀던 버스를 담보로 돈을 빌려 투자금 반납을 완료했다”고 했다.

한 대표는 “대기업 통근버스 사업과 버스 내·외부 벽과 미디어를 활용한 광고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면서 “버스를 여행, 레저, 문화를 위한 모빌리티로 진화시켜 카카오모빌리티, 티맵모빌리티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