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휴대폰 판매점에 갤럭시S24 관련 홍보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연합뉴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임진주(46)씨는 최근 이동통신사를 옮기면 최대 5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전환지원금’ 때문에 휴대폰 대리점을 찾았다. 하지만 대리점에서는 월 13만원 요금제를 6개월간 사용해야 공시지원금 최대 50만원과 전환지원금 1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6만5000원 요금제를 사용해 왔던 임씨 입장에선 휴대폰을 바꿀 경우 6개월간 추가 요금으로 약 40만원을 내야 하는 반면 실제로 받게 되는 혜택은 22만원에 불과하다. 임씨는 “고가 요금제 의무 사용이 조건으로 붙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비싼 요금제를 써야 하는지는 몰랐다”면서 “통신사들이 손해 볼 장사는 절대 안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했다.

정부가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지난 14일부터 ‘전환지원금’ 제도를 시행한 가운데 통신사들이 소비자들에게 전환지원금 지급 명분으로 고가 요금제 의무 사용 조건을 내걸고 있다. 통신 3사들이 지난 23일 전환지원금을 3만~13만원에서 최대 33만원으로 상향 조정했지만 통신비 인하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25일 기준 전환지원금을 살펴보면 KT가 총 15종에 3만~33만원으로 가장 많이 지급하고 있으며, SK텔레콤은 총 13종에 13만2000~32만원을, LG유플러스는 11종에 3만~3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다만 전환지원금 지급 규모는 요금제에 따라 2배 넘게 차이가 난다.

◇ 고가 요금제 의무 사용 어기면 ‘차액정산금’ 납부해야

고가 요금제 의무 사용은 통신사가 단말기 가격을 할인해주는 대신 고가 요금제를 일정 기간 사용하는 통신사와 가입자 간 계약이다. 공시지원금은 요금제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진다. SK텔레콤에서 갤럭시S24 일반모델을 구입할 경우 월 8만9000원 ‘5GX프라임’ 요금제를 선택하면 52만2000원(공시지원금+추가지원금)의 지원금을 받지만, 월 4만9000원 ‘베이직 8GB’ 요금제에 가입하면 지원금이 33만원으로 줄어든다.

SK텔레콤 5GX프라임 요금제에 가입할 경우 통신사는 6개월간 53만4000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가입자가 1개월 만에 요금제를 베이직 8GB로 바꿀 경우 통신사가 6개월간 거둘 수 있는 수익은 33만4000원(8만9000원+4만9000x5개월)으로 줄어든다. 6개월 기대 수익으로 52만2000원의 지원금을 지급했는데, 중간에 요금제를 바꾸면서 지원금보다 수익이 18만8000원 적어지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통신사는 가입자가 요금제 의무 사용을 지키지 않을 경우 지급한 지원금의 차액을 반환하는 ‘차액정산금’을 부과한다. 5GX프라임으로 가입한 소비자가 1개월 만에 베이직 8GB로 바꿀 경우 차액정산금으로 18만8000원을 청구한다는 의미다. 이는 일종의 위약금이라고 할 수 있다.

통신사는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요금제 의무 사용과 차액정산금을 어쩔 수 없이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원금을 일시적으로 받느냐, 저렴한 요금제로 통신요금을 적게 내느냐일 뿐 사실상 ‘조삼모사’에 가깝다.

◇ “정부, 전환지원금으로 큰 혜택 홍보… 사실상 고가 요금제 가입 용인”

통신 3사는 소비자와 합의를 통해 공시지원금을 지급했고, 계약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지급한 지원금을 반환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실제 통신 3사는 이런 내용을 이용 약관 내 ‘위약금’ 부분에 명시해 소비자로부터 동의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은 약관 제42조(위약금 납부 의무) 1항에 ‘약정기간을 설정하여 보조금을 지급받은 고객은 약정기간 종료 전에 약정조건을 변경(요금제 사용 조건 포함)할 경우 회사가 별도로 정하는 바에 따라 차액을 정산(보조금의 반환 혹은 추가지원)할 수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차액정산금은 약관에 명시돼 있으며, 가입자가 가입 당시 동의한 만큼 차액정산금을 피하기가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김진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가입자 본인이 약관에 의한 구속력에 동의, 당사자 사이의 계약이 성립된 것”이라며 “계약 당사자간 합의에 의한 계약상 효력이 발생한 만큼 가입자에게 구속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다만 약관 자체가 소비자에게 불리하다는 인식이 많은 만큼 방송통신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약관의 불공정성에 대한 점검에 나설 필요는 있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시민단체는 정부와 통신사가 전환지원금으로 가계통신비가 크게 낮아지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고가 요금제 의무 사용이 계속되면 통신비 인하 효과는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요금제 변경을 놓칠 경우 오히려 고가 요금제 사용으로 가계통신비 부담이 더 커지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정부가 전환지원금을 통해 마치 큰 혜택을 주는 것처럼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통신사의 고가 요금제 가입을 용인하는 상황”이라며 “고가 요금제 의무 사용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