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을 총괄하는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과 조혜경 한성대 AI 응용학과 교수./삼성전자·한성대 제공

삼성전자가 감사위원 및 사외이사 후보로 선임한 조혜경(60) 한성대 AI 응용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경계현(61) 대표이사 사장(DS부문장)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학·석사 선후배이자, 박사과정도 같은 지도교수 연구실에서 동고동락한 사이입니다.

로봇 전문가인 조 교수와 반도체 전문가인 경 대표는 청년 시절 5년간 이범희 서울대 교수(현 명예교수) 밑에서 박사과정을 함께 밟았습니다. 경 대표는 서울대 제어계측공학 학·석사를 졸업한 후 1988년 삼성전자에 입사, 이듬해 서울대 제어계측공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역대 삼성 반도체 수장 상당수가 전자공학을 전공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이례적인 학업 행보를 이어온 겁니다.

조 교수는 경 사장과 같은 해 서울대 제어계측공학 박사과정에 진학, 1994년 나란히 로봇 관련 졸업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경 대표는 ‘다층 신경 회로망과 연결 모델화된 퍼지 논리 제어기를 사용한 로봇 운동 제어’라는 제목의 졸업 논문을, 조 교수는 ‘협력 작업하는 다중 로봇 시스템의 최소 시간 운동 계획’이란 논문을 썼습니다.

이들은 학술지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한국통신학회가 1989년 발행한 학술대회 논문집엔 이들이 함께 연구한 ‘직기 시설 자동화 기술 개발에 관한 연구 III: 직기의 자동화 및 자동 운전 감지 시스템의 설계 및 기술 개발’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박사 취득 후 조 교수는 대우고등기술연구원에 들어갔다가 1996년부터 한성대 공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국내 첫 여성 로봇 공학자로 이름을 알린 조 교수는 제어 계측을 비롯해 IT 융합, 로봇 소프트웨어를 연구해 왔습니다. 공학계 ‘명예의 전당’이라 불리는 한국공학한림원에 경 대표와 함께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2022년 한국로봇학회 19대 회장을 역임한 조 교수는 한국로봇산업진흥회 이사, 제어로봇시스템학회 부회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기계소재전문위 위원 등을 지냈습니다.

삼성전자는 조 교수가 미래 먹거리인 로봇 분야에서 여성 최고 전문가라는 점에 착안해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내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수종 돌파구가 필요한 삼성전자는 로봇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초 협동 로봇 스타트업 레인보우로보틱스에 870억원 규모의 전략적 지분 투자를 했고, 올 1월 CES 2024에선 가정용 AI(인공지능) 집사 로봇 ‘불리’를 내놨습니다. 당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생성형 AI와 로봇이 결합하면서 로봇 산업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추구하는 로봇의 최종 목표는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지능형 로봇”이라고 했습니다. 최근엔 네이버와 ‘로봇 에지 컴퓨팅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임기가 3년인 조 교수의 선임안은 오는 20일 열리는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습니다.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경영진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가 회사 뜻에 따라가는 거수기 노릇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은 국내에서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감사위원회 위원 3분의 2 이상을 사외이사로 두게 하는 것도 사내이사로부터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로봇공학 한 우물을 파온 조 교수가 삼성전자의 신사업에 대한 조언과 견제를 이어가는 동시에 주주의 이해관계도 반영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