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 현판(방심위 제공)

최근 1년간 디지털성범죄가 1만건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n번방 방지법’이 무용지물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성범죄란 카메라 등의 매체를 이용해 상대방 동의 없이 신체를 촬영, 유포·유포 협박·저장·전시하거나 사이버 공간 등에서 자행하는 성적 괴롭힘을 뜻한다.

29일 방송통신심위위원회(이하 방심위)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성범죄 심의건수는 6만7102건으로 전년(5만5287건)보다 1만1815건 증가했다.

방심위는 자체 모니터링과 신고 등을 통해 접수된 인터넷 상의 불법·유해 정보건에 대해 심의·시정하고 있다. 지난해 심의한 디지털성범죄 6만7102건 중 6만6909건을 접속차단했다. 이용정지 및 해지는 9건, 삭제는 11건이었다.

방심위는 지난 2021년 12월 n번방 방지법 시행 이후 2022년부터 음란·성매매 뿐 아니라 디지털성범죄 관련 통계를 집계하고 있다. 음란·성매매 심의건수도 2021년 3만4547건, 2022년 5만2793건, 지난해 5만9086건으로 증가세다.

’n번방 사태’로 성착취물 등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처벌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처벌 수위를 상향한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됐음에도 디지털성범죄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인 것이다.

n번방 사태는 2018년 하반기부터 2020년 3월까지 텔레그램·디스코드·라인·위커·와이어·카카오톡 등의 메신저앱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유인한 뒤 협박해 성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성 착취 사건이다.

n번방 방지법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텔레그램까지 합치면 더 많은 디지털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텔레그램은 국내 법인도 없고 ‘일반 대화방’이 아닌 ‘사적 대화방’으로 분류돼 인터넷 사업자에게 성범죄물 삭제 등 조처를 하도록 한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디지털, 사이버 공간의 확대로 기존 오프라인 성범죄가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오고 있다”며 “특히 딥페이크나 인공지능(AI) 등을 이용한 신기술로 디지털성범죄가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처벌을 위한 법적 강화만으로는 증가하는 디지털성범죄를 막기가 어렵다”며 “성범죄자들의 재범 방지와 성의식 개선을 위한 교육과 교정 행정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