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에서 한국·일본 등 동맹국 내 반도체 장비사에 대한 중국 수출 제재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가 한국·일본 등 동맹국 반도체 장비 기업에 대한 대중(對中) 수출 통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수출 규제로부터 자유로웠던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도 ASML, 램리서치, KLA 등 첨단 반도체 장비 제조기업과 마찬가지로 중국 수출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SIA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각)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에 미국과 동맹국이 같은 품목을 통제하고 같은 허가 절차를 두는 식의 수출 규제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제출했다. SIA는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기준이 동맹국보다 까다로워 미국 기업들이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자국 기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유럽연합(EU)과 일본, 한국 등 다른 동맹국도 미국 기업과 유사한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中 매출 비중 급등한 글로벌 장비 기업… “美 수출 제한 리스크”

미국은 지난해 10월 1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과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나노 이하 로직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다. 네덜란드도 미국의 수출 규제에 동참해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출이 제한됐고, 최근 심자외선(DUV) 장비의 수출 면허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이 같은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예상한 중국 반도체 기업이 글로벌 장비사들의 제품 사재기에 나서며 ASML과 램리서치, KLA 등 첨단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들의 중국 매출 비중이 상승했다.

ASML의 지난해 중국 매출 비중은 1분기에 8% 안팎에 그쳤지만, 3분기엔 46%까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의 장비 수요로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275억5900만유로로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램리서치도 2024 회계연도 1분기(7~9월) 중국 매출 비중이 48%로 전년 동기 대비 18%포인트(p) 늘었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로 글로벌 장비 기업들의 매출 성장세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반도체 장비 사재기 특수로 글로벌 장비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이 예상보다 좋았다”며 “미국의 중국 첨단 장비 수출 제한은 올해 반도체 장비 기업들의 실적에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 美 반도체협회, 동맹국 수출 규제 요구에… “韓 장비사에 부담 요인”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의 동맹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요구에 전문가들은 중국에 장비를 납품하는 주성엔지니어링과 넥스틴 등 국내 장비업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 선임연구원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는 앞으로도 계속 강화될 정책 기조”라며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미국의 규제 대상에 속하지 않았지만, 이 같은 논의가 지속된다면 중국에 납품 비중이 높은 국내 장비 기업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전체 매출액(1864억원) 중 60% 이상(1137억원)이 중국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4분기에도 중화권 매출 비중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중국에 원자층증착(ALD) 장비를 납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주성엔지니어링의 중화권 매출 비중은 80~85%로 추정된다”며 “올해 비메모리 기업 신규 진입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넥스틴은 지난해 10~12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SMIC, SMIC의 자회사 SMSC와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총액은 437억원 수준으로 넥스틴은 SMIC와 SMSC에 웨이퍼 인스펙션 장비를 납품한다. 웨이퍼 인스펙션 장비는 반도체의 미세 패턴을 형성하는 전공정에서 패턴 결함을 검출하는 검사 장비다. 넥스틴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전체 매출액(689억원) 중 82%인 571억원이 중국에서 발생할 정도로 중국 매출 비중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