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본사 사옥./SK텔레콤

SK텔레콤(017670) 가입자 일부가 회사를 상대로 “개인정보의 가명처리를 중단해달라”는 소송을 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승소한 가운데, SK텔레콤이 이에 불복해 ‘상고’에 나섰다. 가명처리란 개인정보 일부를 삭제·대체해 추가 정보 없이는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하는 조치다.

26일 통신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이달 10일 서울고등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앞서 지난달 20일 서울고법 민사7부(재판장 강승준)는 SK텔레콤 가입자 A씨 등 5명이 SK텔레콤을 상대로 낸 처리정지 청구 소송을 1심과 같이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원심에 이어 개인정보보호법에서 보장하는 ‘처리정지 요구권’을 명확히 인정한 첫 법원 판결이다.

A씨는 2020년 10월 SK텔레콤에 보유한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가명처리 사실 여부, 가명처리했다면 그 대상이 된 개인정보 일체를 열람할 수 있는지를 물으며 자신의 개인정보를 SK텔레콤 혹은 제3자의 과학적 연구, 통계, 공익적 기록보존의 목적으로 가명처리하는 것에 대한 ‘처리정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SK텔레콤 측은 “가명처리는 정보 주체를 특정해 처리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의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없고, 이미 가명처리된 정보에 대해서는 개인정보의 열람과 처리정지권이 제한된다”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A씨는 다른 SK텔레콤 가입자들과 함께 2021년 2월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하는 것에 대한 정지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다.

개인정보보호법 28조의 2는 “개인정보처리자는 과학적 연구, 통계작성,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해 당사자 동의 없이 가명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SK텔레콤 측은 원고인 고객들이 개인정보에 대한 처리 정지를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는 정보주체자(고객)는 개인정보처리자인 SK텔레콤에 개인정보에 대한 가명처리를 정지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고객이 (사전에) 가명처리의 정지를 요구할 경우 회사는 이를 들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개인정보 처리정지 요구권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을 담은 ‘개인정보보호법 제28조 7′에 언급된 처리정지 요구권은 이미 가명처리된 정보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 식별가능 정보를 가명처리하는 것에 대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식별가능 정보를 대상으로 하는 ‘가명처리’와 가명처리를 통해 생성된 ‘가명정보’를 대상으로 한 ‘가명정보 처리’를 구분된 개념으로 판단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정보주체의 식별가능 정보 가명처리에 대한 처리정지 요구권 행사는 가명정보에 관해 가지는 사실상 유일한 결정권 행사”라며 SK텔레콤이 원고들의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원고들의 취지를 명확히 반영해 “개인정보보호법 28조의 2에 언급된 과학적 연구, 통계작성, 공익적 기록보존을 목적으로 원고들의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최근 고객들의 개인정보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을 개발하고, 맞춤형 서비스와 상품개발에 나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대법원 판단을 받을 때까지는 장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판결이 확정될 경우 SK텔레콤뿐 아니라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업들은 과학적 연구, 통계작성, 공익적 기록보존을 위해서라도 정보주체자인 이용자들이 사전에 가명처리 정지를 요구하면 이들의 정보를 가명처리해서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해 파장이 예상된다.

원고들을 대리한 최호웅 덕수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개인정보보호법에서 보장하는 ‘처리정지 요구권’을 법원으로부터 명확히 인정받고 고객의 선택권을 보장받은 첫 판결인데 끝까지 다투겠다는 모습은 유감이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을 대리한 고환경 광장 변호사는 “가명처리는 그 누구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며 “처리정지권이 남용될 경우에는 우리나라가 AI 등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어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