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팹(공장) 내부./삼성전자 제공

중국 반도체 장비업계가 미국의 수출 규제로 기술 자립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 관련해서는 정부의 지원책이 미흡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622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에 나서는 민간 기업을 적극 지원하겠다면서 현재 30% 수준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자립화율을 오는 2030년까지 50%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부장 관련 항목 중 구체화된 사업금액은 1조원에도 못 미쳐 자립화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정부의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방안 중 소부장과 관련해 구체화된 사업은 9060억원을 들여 SK하이닉스 클러스터 내 ‘소부장-칩 기업 양산 연계 테스트베드’를 오는 2027년까지 완공한다는 것과 정부가 올해 소부장 연구개발(R&D)에 680억원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테스트베드는 소부장 기업이 개발한 소재, 장비에 대한 양산 신뢰성을 칩 양산기업과 함께 검증해 투입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활용된다.

강성철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선임연구원은 “테스트베드도 소부장 기업에 혜택이 되겠지만, 기술 수준이 미흡한 분야의 기술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며 “연구개발 시설 확충 등 소부장 기술 자립화를 이끌어낼 정부 투자가 확대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 中, 반도체 장비 자립화에 54조 투자 전망… 美 제재에 반사이익 거두기도

중국에서는 미국의 제재에 맞서 반도체 장비 자립화를 위한 정부 주도의 대대적인 투자가 단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 발간한 ‘미국의 반도체 수출통제 확대 조치의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자국 반도체 제조업체의 약점인 제조장비 경쟁력 향상을 위해 약 400억달러(약 53조8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중국은 2022년 기준 35% 수준에 머물고 있는 반도체와 제조장비의 자급률을 75%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투자와 함께 중국 반도체 장비업계는 미국의 제재에 따른 반사이익까지 거두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1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과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나노 이하 로직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다.

미국의 이 같은 조치에 중국 반도체 제조기업의 해외 장비 수입이 막히자, 자국 장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에 따르면 베이팡화창(Naura)과 AMEC 등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매출액은 전년과 비교할 때 최소 30%에서 57%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의 제재가 역설적으로 중국 반도체업계의 장비 자급화를 촉진하고 있다”며 “기술력이 상당 수준 올랐기 때문에 수요가 발생해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韓,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소부장 기술 연구개발 정부 투자 늘려야”

국내에서도 소부장 자립화를 위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내에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공급망에 언제든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저조한 소부장 자립화율은 반도체 경쟁력에 치명적”이라며 “테스트베드뿐만 아니라 기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연구개발과 인재 육성 등 소부장 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추가로 구체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원할 기술 분야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광과 도핑 공정 등 국산화 장비가 전무해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장비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장비업계 관계자는 “‘소부장 으뜸기업’ 선정 등 현재까지의 정부 정책은 기술 역량을 입증한 특정 기업들이 지원받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면서 “결국 해당 기업들이 잘하고 있는 분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극자외선(EUV) 장비 등 기술 공백이 상당해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분야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에는 어려운 대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