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규제다. 시장 경쟁과 소비자 선택권을 법으로 제한하는 법은 폐지되거나 개정되는 게 맞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단통법은 기업들의 이익을 보전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신철원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
정부가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올해로 만 10년이 되는 단통법 폐지를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단통법이 가격 공개로 소비자들에게 공정한 혜택을 누리게 하겠다는 초기 취지와 달리 오히려 가계통신비 인하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며 이 같은 움직임에 환영의 뜻을 보이고 있다.
16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 부처에 단통법 폐지를 포함한 재도 개선을 전면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가계통신비 절감차원에서 단통법 폐지를 포함해 다양한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통법은 지역이나 유통점에 상관없이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보조금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당초 정부는 단통법이 시행되면 통신 3사가 보조금 경쟁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대신 이를 요금에 투입해 통신비가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경쟁에 나설 이유가 사라진 통신사들이 다 같이 돈을 안 쓰는 전략을 취하면서 전 국민이 비싸게 휴대폰을 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는 사이 통신 3사는 지난해를 포함해 3년 연속 영업이익 4조원대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결국 호갱(속이기 쉬운 고객)을 막고자 한 법안이 전 국민을 호갱으로 만든 법이 된 셈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7월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을 통해 단통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개정안은 대리점이나 판매점이 이동통신 사업자가 공시한 지원금의 15% 안에서만 추가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을 30%로 확대하는 방안을 담았다. 하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단통법을 폐지하는 대신 보조금만 상향돼 통신비 인하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안 역시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방효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단통법으로 통신사가 제공하는 공시지원금이 일원화되면서 당초 취지와 달리 통신사가 일제히 보조금을 줄였다”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공시지원금이 축소됐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 사이 통신사만 수익성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그는 단통법 시행 초기보다 단말기 가격이 크게 오른 점에 주목했다. 방 위원장은 “통신요금보다 단말기 가격의 오름폭이 더 가파른 상황에서 단통법이 폐지되면 통신사가 지원금을 더 많이 풀게 돼 결국 가계통신비 인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철원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은 “단통법 시행 이후 소비자들의 지출이 커졌다”며 “단통법 폐지를 환영하지만, 기업들의 반발로 폐지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생색내기용 개정에 그칠까 우려된다”고 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단통법이 도입된 당시와 비교하면, 소비자도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고 있다”며 “단말기 가격 부담이 큰 상황에서 경쟁과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는 법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완전한 폐지보다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단통법이 취지와 달리 통신사의 보조금 경쟁을 제한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이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이용자의 이익 저해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완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단통법은 이익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너무 명확해 완전한 폐지보다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가계통신비 인하를 주문한 후 과기정통부가 내놓은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과 제4 이동통신사업자 유치가 시장 경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단통법 폐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보여 실제 폐지가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