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코리아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16억원의 과징금 폭탄을 맞은 것을 두고 게임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 게임사만을 겨냥해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게임산업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상황 속에서, ‘입법 미비’ 시기에 벌어진 일에 대한 강도 높은 사후 처벌까지 이뤄졌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지난 3일 “넥슨이 자사 온라인 PC 게임 ‘메이플스토리’ 등에서 확률형 아이템이 나오는 확률을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고도 이를 알리지 않거나 거짓으로 알렸다”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게임 서비스 제공 사업자의 이용자 기만행위 등에 대해 역대 최다 과징금을 부과함으로써 관련 사업자들에게 소비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경각심을 일깨워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넥슨 사옥./뉴스1

◇ 게임업계 “제도 미비 시절 행위에 대한 과도한 처벌”

4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의 넥슨 처분에 대해 게임업계에서는 “현재 잣대로 과도한 처벌을 내린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에 대한 제대로 된 제도가 마련되기 전 일어난 업계의 관행을 ‘역대 최대 과징금’으로 처벌하면서 새로운 수익모델(BM)을 개발해야 하는 게임사들의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비슷한 일로 또 처벌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 공정위에서 문제로 지적한 2010~2016년은 전 세계적으로 게임 확률 공개에 대한 법적 의무와 조치 사례가 없던 시기다. 국내 게임사들이 속한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 2015년부터 업계 자율로 유료 아이템의 경우 습득 확률을 공개하기로 했다. 이후 세 차례 개선을 통해 확률 정보 공개 범위가 점차 확대됐고, 현재 대부분 국산 게임은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 확률을 고지하고 있다.

한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수많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게임이 자율규제 이전 확률형 아이템을 운영했고, 많은 이용자가 몰리는 MMORPG 특성 상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일정 부분 조정했다”면서 “거짓으로 확률을 공지한 것은 당연히 잘못된 일이지만, 확률 공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생기기 전 공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게임사들을 위축시키는 행위”라고 말했다.

공정위 결정에 참고인으로 참여한 황성기 한양대 로스쿨 교수도 “법적으로나 자율규제 상으로 확률 공개 의무가 없던 시기에 기업이 확률을 먼저 공개했음에도 이전 확률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법행위로 결정한 것은 ‘과잉금지원칙’ 내지 ‘비례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정위는 “전자상거래법상 위반 행위는 법적 고지 의무가 있을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자율규제가 생긴 이후 넥슨의 달라진 행보가 이번 처분에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업계에서 나온다. 넥슨은 이용자들의 아이템 확률 공개 요구가 거세지자 지난 2021년 3월 국내 게임업계 중 가장 먼저 확률 아이템을 공개했다. 같은 해 12월 시행된 협회의 자율규제 개정안보다 9개월 앞선 조치로, 넥슨은 확률 변동을 이용자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확률 모니터링 시스템 ‘넥슨 나우’도 추가 도입했다.

넥슨의 '메이플 스토리'./조선DB

◇ 해외 게임사만 피해가는 ‘규제’… 역차별 논란도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정부 규제가 국내 업체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자율 규제 도입 이후 확률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업체 대다수는 해외 게임사인데, 처벌의 칼날은 국내 기업에만 겨누기 때문이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가 작년 6월 유료 확률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임물 159개의 자율규제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한 결과 국내 업체의 98%가 유료 확률형 콘텐츠에 대한 자율규제를 준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외 개발사 게임은 56%만 따르고 있었다.

중국 유조이게임즈의 ‘픽셀히어로’가 대표적이다. 작년 6월 국내에 출시된 모바일 게임 ‘픽셀 히어로’는 같은 해 8월 유료 뽑기 상품의 확률을 조작했다는 파문에 휩싸였다. 이후 유조이게임즈는 해명에 나섰지만, 해명 마저 거짓으로 판명나며 논란을 키웠다. 중국 게임사 페이퍼게임즈의 ‘샤이닝니키’ 등 출시 1년도 안 돼 서비스를 종료하고 환불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오는 3월부터 시행하는 게임산업법 시행령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 유형(캡슐형, 강화형, 합성형, 컴플리트가챠, 천장제도 등)과 표시사항(확률정보·아이템이 제공되는 기간 등), 표시의무 대상 게임물, 확률표시방법 등을 규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4명 규모의 확률형 아이템 모니터링단을 설치하고, 확률정보 미표시와 거짓 확률 표시 등 법 위반 사례를 단속할 방침이다.

문제는 국내에 법인을 두지 않는 해외 게임사에는 확률형 아이템 표시 의무를 강제할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국내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해외 게임사 중 공정위가 제정한 ‘모바일게임 표준약관’을 지키지 않은 업체가 많은데, 이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제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해외 업체들은 자율규제도 안 따르고, 법안 적용도 안 받는다”고 했다. 문체부는 국내대리인 제도 도입 방안 등을 추진해 해외 게임사도 확률정보 공개 의무를 준수하도록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개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는 확률형 아이템 관련 규제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자율규제로 하는 곳도 많다”면서 “이미 국내 업체들 사이에서는 자율규제가 잘 작동하고 있는데, 시행령까지 도입해 국내 업체만 옭아매는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도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기업 활동에 어려움을 가중할 수 있는 부담은 최소화해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