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통신업계에는 5G(5세대 이동통신) 28㎓(기가헤르츠) 주파수 할당 취소부터 정부 주도 가계 통신비 완화, 알뜰폰 성장까지 다양한 이슈가 있었다. 5G 가입자 수가 처음으로 3000만명을 넘었고 알뜰폰 가입자 수도 1500만명을 달성하는 등 통신 시장에서도 소비 양극화가 커졌다.
내년 통신업계는 ‘비통신’ 기조가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가계 통신비 인하 압박 속에서 무선통신 가입 수가 8300만회선을 넘어서는 등 포화상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통신 만으로는 돈을 벌기 힘든 상황으로 통신 3사는 인공지능(AI), 디지털 전환(DX), 양자보안 등 미래 먹거리를 키우고 있다. 올해 통신업계를 되돌아보고, 내년 통신업계를 전망해 본다.
◇ 초유의 통신 3사 ‘5G 28㎓’ 주파수 반납… 제4통신사 모집
지난해 12월 KT와 LG유플러스가 5G 28㎓ 주파수를 반납한 상황에서 지난 5월 SK텔레콤까지 28㎓ 주파수를 반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따라 통신 3사와 정부가 2018년 5G 상용화 당시 국민들에게 약속한 ‘LTE(4세대 이동통신) 대비 20배 빠른 5G’ 서비스는 실패로 돌아갔다.
통신 3사는 LTE 대비 평균 5~6배 빠른 5G 3.5㎓ 주파수로 5G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반쪽짜리 5G’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통신 3사의 28㎓ 주파수를 취소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통신 3사는 주파수 할당 비용 6200억원을 손실처리했지만, 정부는 통신 3사 탓만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제4통신사를 유치해 5G 28㎓ 주파수 서비스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달 종료된 모집에는 알뜰폰 업체 세종텔레콤, 스테이지파이브(스테이지엑스)와 마이모바일(마이모바일컨소시엄) 등 3곳이 지원했다. 다만 정부에서 기대했던 대기업, 거대 플랫폼사가 참여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수익성이 낮아 통신 3사가 포기한 5G 28㎓ 주파수를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업체들이 제대로 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되고 있다.
◇ 3만원대 5G 요금제에 알뜰폰 성장까지… 저가 요금제 확대 긍정적
정부의 가계 통신비 완화 움직임에 5G 저가 요금제가 확대된 건 올해 분명한 성과다. 특히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은 “통신 분야 독과점 폐해를 줄이기 위해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통신업계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지난 5월 통신 3사는 정부의 압박에 5G 중간요금제를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5G 요금제 시작 요금이 월 4만원으로 높다는 지적이 계속됐고, 지난 10월 LG유플러스가 초개인화 5G 요금제를 선보이면서 통신 3사의 저가 요금제 경쟁이 본격화됐다. 월 3만원대로 5G 요금제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5G폰으로 LTE 요금제에 가입할 수 있도록 요금제 문턱을 낮춘 것도 성과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휴대폰 단말기와 상관없이 원하는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알뜰폰의 0원 요금제 경쟁에 알뜰폰 가입자 수가 15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저가 요금제 선택권이 확대된 것도 고무적이다. 여전히 통신 3사 자회사가 알뜰폰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지만, 알뜰폰 업체 간 경쟁이 고조되면서 알뜰폰의 고질적 문제로 꼽힌 고객센터 서비스 개선, 결합 상품 확대 등이 늘었다.
◇ 2024년 AI 컴퍼니·플랫폼 기업 전환… 비통신 움직임 더 빨라진다
내년 통신업계는 ‘비통신’ 움직임이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통신 3사의 비통신 움직임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SK텔레콤은 인공지능(AI) 컴퍼니로의 전환을 발표했고, LG유플러스도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을 선언했다. 수장이 바뀐 KT는 디지털 혁신 파트너를 내걸고 디지털 전환(DX) 전문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상태다.
통신사들이 비통신으로 눈을 돌리는 배경에는 포화상태에 접어든 통신 산업이 있다. 지난 10월 기준 무선통신 가입 수는 8335만회선으로 전체 국민 수의 1.5배에 달한다. 같은 기간 고객용 휴대폰 회선 수도 5623만회선으로 국민 수를 넘어선 상태다. ‘가입할 사람들은 다 쓰고 있는’ 통신 서비스 만으로는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의미다.
통신업계의 비통신 사업 중심에는 AI가 있다. 통신 3사는 클라우드, 인터넷데이터센터(IDC) 등 통신과 연계된 비통신 사업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생성형 AI 분야를 키우고 있다. SK텔레콤 ‘에이닷’, KT ‘믿음’, LG유플러스 ‘익시젠’ 등이 대표적이다. AI가 통신의 역할인 ‘연결하고’ ‘묶고’ ‘통합하는’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 37조 화물운송 공략… 24조 양자보안통신 기술 선도
통신 3사는 차별화된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DX, 보안 사업도 키우고 있다. 통신 3사의 DX 서비스는 그동안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된 생산(제조), 물류 등을 디지털화하는 걸 목표로 한다. 기존 공장을 스마트 팩토리로 만들어 제조 혁신을 이끌고, 화물운송 시장의 디지털화를 유도해 효율을 높이는 식이다.
37조원 규모의 미들마일(중간 물류) 플랫폼 시장을 통신 3사가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들마일은 기업과 기업 간(B2B) 운반 과정을 말한다. 화물운송은 기존 통신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적합한 시장이다. 통신사는 화물운송에 필요한 통신 네트워크를 보유한 만큼 화물운송의 핵심 서비스인 관제 시스템 역량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통신 네트워크를 빌려 써야 하는 모빌리티 업체와 달리 통신사는 자체 역량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같은 이유로 통신사는 스마트팩토리, 지능형 교통체계(ITS), 도심항공교통(UAM) 시장을 키우고 있다.
통신 3사는 보안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대부분의 보안 사고가 데이터센터에서 사용자에게로 연결되는 중간 단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이 빨라질수록 보안 시장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자율주행차, UAM 등 생명과 직결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외부 공격을 강력하게 막을 보안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SK텔레콤과 KT는 양자보안통신 기술이 가능성을 확인, 관련 사업을 키우고 있다. 양자보안통신은 한국이 표준 개발을 이끌고 있다. 양자기술을 활용해 불법 해킹을 차단할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놓은 ‘2022 양자정보기술백서’에 따르면 전 세계 양자암호통신 시장 규모는 연평균 40% 성장, 2030년 24조58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