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일본 도쿄 시내 한복판에 있는 대형 전자기기 판매점 빅카메라. TV 판매 코너에는 소니 등 일본 대표 전자 기업을 제치고 중국업체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중국 TV 제조업체 TCL은 “글로벌 ‘넘버 2′″라고 홍보 중이었다. 빅카메라 TV 판매원은 “올해 3분기쯤부터 TCL이 ‘글로벌 2위’라고 적힌 광고물을 배포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며 “중국업체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이곳에서도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 TV가 가장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TCL이 세계 2위 TV 업체라고 주장하며 출처로 내세운 건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다. 19일 옴디아 집계에 따르면, 올 3분기 누적 글로벌 TV 출하량은 1위 삼성전자(약 2719만9000대)에 이어 TCL이 약 1773만9000대를 판매해 2위에 올랐다. LG전자 TV 출하량은 1629만8000대로, 또 다른 중국 TV 업체 하이센스(약 1631만7000대)에 밀려 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TV 매출액에는 TCL이 말하지 않는 일면이 있다. 올 3분기 누적 매출액 기준 1위는 삼성전자로 약 216억달러(약 28조원), 2위는 매출액 약 115억달러(약 14조9000억원)를 기록한 LG전자였다. TCL은 3위(약 72억달러·약 9조3000억원)로, LG전자 매출액의 63% 수준이었다. 출하량에서 3위였던 하이센스는 매출액 약 65억달러(약 8조4000억원)로, 4위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수량 기준으론 TCL이 세계 2위에 올랐지만, 객단가가 떨어져 매출액 기준으로는 2위에 오른 적이 없다”며 “올해 TCL TV 매출액은 LG전자의 절반 수준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TCL은 매출액 대신 강점을 보인 출하량을 기준으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것이다.
출하량으로 TCL이 LG전자를 넘어선 것은 지난해부터다. 국내업체들은 액정표시장치(LCD) 패널보다 화질이 우수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사업을 확장하는 반면, 중국업체들은 LCD TV 저가 물량 공세로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TV 성능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지난해 중국이 독식한 LCD TV 패널값이 역대 최저점을 찍은 후, 중국 패널 업체와 TV 업체의 협력으로 중국산 TV의 가격 우위가 공고해졌다고 말한다. 여기에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맞물리면서 글로벌 소비자들도 이른바 ‘가성비’ 제품에 지갑을 열고 있다. 이에 중국업체들의 TV 출하량은 2020년 이후 매년 늘어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 출하량은 감소세다.
이충훈 디스플레이 시장조사업체 유비리서치 대표는 “미니 LED를 사용해 기존 제품보다 발전한 형태의 중국 LCD TV가 성능 대비 저렴한 가격에 출시되면서 프리미엄 TV 주요 소비처인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올해 OLED TV가 잘 안 팔리고 있다”며 “TV 수요가 몰린 저가형 모델에서는 중국산 TV가 매우 싸 삼성과 LG가 경쟁하기 어려워졌고, 1500~2000달러 사이 프리미엄 TV 시장에서도 점차 중국 제품이 성능 면에서 한국·일본 제품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TV 업체들의 저가 물량 공세에 맞서 국내업체들은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해 수익성 위주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 프리미엄 TV와 연계해 광고 등으로 매출을 늘릴 수 있는 스마트 TV 플랫폼 사업도 새로운 수요 창출처로 키우고 있다. 국내 TV 업계 관계자는 “제조 측면에선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하고, 이와 더불어 구매력이 있는 프리미엄 TV 사용자를 기반으로 자체 플랫폼 사업 범위를 확장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