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G(5세대 이동통신)와 LTE(4세대 이동통신)를 구분하지 않는 ‘통합요금제’ 출시를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5G 단말기로 LTE 요금제를 사용하고, LTE 단말기로 5G 요금제에 가입하는 ‘요금제 선택권 확대’를 넘어 아예 장벽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통합요금제가 출시되면 소비자들은 데이터 용량과 통신 속도만 결정하면 5G와 LTE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3일 정부 등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와 이동통신 기술을 구분하지 않고 데이터 용량, 통신 속도 등에 따라 요금을 정하는 통합요금제 출시 여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이 지난달 22일 정부와 논의를 거쳐 5G·LTE 사이의 장벽을 허문 상황에서 아예 5G와 LTE 구분을 없애겠다는 의미다.
◇ 미국, 영국, 호주, 일본서는 보편화된 상품
정부는 5G 단말기로 LTE 요금제를 쓰고, LTE 단말기로 5G 요금제를 쓸 수 있는 ‘요금제 선택권 확대’를 통합요금제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로 보고 있다. 홍진배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은 지난달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 브리핑에서 “통신 서비스에 대해 정부는 5G와 LTE 구분 없이 (데이터 등을) 사용한 만큼만 (요금을) 낼 수 있는 이용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통합요금제로 가는 데 반대하지 않으며, 통합요금제로 가는 방향성을 놓고 사업자들과 논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통합요금제는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미 보편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완주 무소속 의원실에 따르면 미국 버라이즌과 AT&T, 영국 O2와 EE, 호주 텔스트라와 옵터스, 일본 KDDI 등이 통합요금제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미국 AT&T의 경우 휴대폰용 무선 요금제를 ‘AT&T Premium’ ‘AT&T Extra’ ‘AT&T Starter’와 같은 형태로 판매 중이다. 5G와 LTE로 구분하지 않고 월 50달러, 45달러, 35달러 등 가격을 기준으로 요금제를 분류하고 있다. 해당 요금제의 월 제공 데이터 용량은 각각 50기가바이트(GB), 15GB, 3GB다. 요금제 설명 어디에도 5G 또는 LTE를 사용한다고 명시하지 않는다. 요금과 데이터 용량, 통화·문자 무제한 등에 대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제공해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5G와 LTE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O2도 마찬가지다. O2는 5G와 LTE 구분 없이 월 데이터 제공량에 따라 요금을 책정해 서비스하고 있다. 12.99파운드에 30GB, 17.99파운드에 150GB, 25.99파운드에 무제한 등이다. O2는 모든 요금제에 5G 서비스를 제공하고, 5G가 터지지 않는 장소에서는 LTE를 서비스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O2는 요금제 설명서에 공통적으로 “해당 요금제에는 5G 서비스가 포함되며 가입자는 5G 단말기만 있으면 된다. O2 유심카드를 구입하면 LTE와 5G 네트워크를 모두 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호주 텔스트라와 일본 KDDI도 동일하다. 월 제공 데이터 용량을 10~100GB로 세분화하고 요금을 정해 판매 중이다. 기본적으로 LTE를 쓸 수 있고, 5G 서비스 가능 지역에서는 5G 사용이 가능하다.
◇ 통신사 수익성 악화 우려… 기존 LTE 가입자 부담 커질 수도
통신 3사는 정부의 통합요금제에 추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통합요금제가 도입될 경우 ‘LTE 대비 5G는 더 빠른 서비스’라는 차별점이 사라져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 한 관계자는 “통합요금제가 도입될 경우 5G와 LTE의 구분이 사라져 소비자 선택권이 좁아질 수 있다”면서 “5G폰으로 LTE를 쓸 수 있고 LTE폰으로 5G를 쓸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통합요금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시민단체는 5G 가입자의 경우 통합요금제 도입으로 통신비가 낮아질 수 있지만, LTE 가입자는 오히려 요금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적절한 수준의 요금 단가를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통합요금제로 기존 LTE 가입자가 손해를 볼 수 있으니, 효과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라며 “소비자가 쓴 만큼 요금을 내는 방향으로 통신요금 체계를 바꿔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