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생성형 인공지능(AI) 생태계를 주도했던 오픈AI가 최근 혼란에 빠지면서 차세대 AI 모델 ‘GPT-5′ 출시 계획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자체 구축 중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한국 AI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오픈AI 인력들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등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아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개발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GPT-5 파라미터, GPT-4 대비 125배

22일 업계에 따르면 오픈AI는 차세대 AI 모델 ‘GPT-5′ 개발을 진행 중이며, 지난 7월 미국 특허청에 상표권 출원을 마쳤다.

GPT-4 출시일을 정확히 맞히며 오픈AI 내부자로 알려진 팁스터(정보 유출자) 지미 애플스는 지난 9월 자신의 트위터에 “오픈AI 내부적으로 AGI(인간 수준의 AI)가 달성됐다”며 “파라미터(매개변수) 125조개 기반으로 GPT-5를 개발했으나 안전을 위해 2024년까지 출시를 보류 중”이라고 주장했다.

GPT-4의 파라미터는 1조개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GPT-5는 이보다 125배 뛰어난 만큼 ‘꿈의 AI’ AGI 단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GPT-4 기반의 ‘약 인공지능’은 자연어 처리가 가능한 챗GPT, 그림을 그리는 ‘달리(Dall-E)’처럼 특정 역할만 가능하다. ‘강 인공지능’인 AGI는 사람과 같이 거의 모든 분야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AI가 스스로 학습해 인간 수준을 넘어서는 ‘초지능’ 단계까지 도약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샘 올트먼 전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일 오픈AI 첫 개발자 회의에서 “개발 중인 GPT-5가 AGI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올트먼 전 CEO는 또 이달 말 AI 챗봇 거래장터인 ‘GPT 스토어’ 출시를 예고했고, 유료모델 확대를 위해 GPT-4 터보(맞춤형 챗봇), GPT-4V(이미지분석) 개발 등 상업화에도 적극적이었다.

샘 올트만 오픈AI 전 CEO./연합뉴스

이처럼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오픈AI는 올트먼이 지난 17일(현지시각) 이사회로부터 해고를 당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오픈AI 이사회는 올트먼과 AI 발전 속도와 안전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올트먼의 해임이 공식화하자 70% 이상의 오픈AI 직원들이 올트먼의 복귀를 요구하고 나섰다.

김두현 건국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이번 알트만 해임 사태로 GPT-4를 잇는 GPT-4V와 GPT-5 등의 출시 일정이 늦춰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면서 “GPT의 소유권이 여전히 오픈AI에 있다면 이사진이 새롭게 구성돼 제대로 된 의사결정 체계가 가동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후속 버전의 출시가 얼마나 지연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 네이버·카카오 생성형 AI LLM, 아직 GPT-4 수준 안돼

오픈AI GPT 모델과 경쟁하는 대규모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 베타 서비스를 지난 8월 공개한 네이버는 현재 상용화 기반을 차근차근 마련하고 있다. 하이퍼클로바X 기반의 기업 대상 맞춤형 AI 서비스로 B2B(기업간거래) 시장에서 수익원을 발굴하겠다는 목표다.

카카오도 LLM ‘코GPT 2.0′을 연내 공개한다는 목표다. 이를 기반으로 우선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결합된 ‘AI 콘텐츠봇’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의 수준이 GPT-3.5보다 일부 낫지만 GPT-4에는 못 미치는 것이 중론이다. 카카오 코GPT 2.0도 GPT-4 성능에는 못 미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만약 오픈AI의 유료화 모델 출시와 GPT-5 개발이 예정대로 이뤄진다면 네이버와 카카오 입장에서는 국내 AI 시장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

국내 한 AI 스타트업 대표는 “오픈AI가 AI 시장을 선도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생태계를 개척하고 있는 만큼 국내 대기업 뿐 아니라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가장 큰 경쟁사”라며 “오픈AI의 수습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지연이 되면 시간을 벌고, 국내 기업들이 좀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픈AI의 혼란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국내 기업들에게 오히려 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트먼이 MS의 신생 AI 연구조직에 합류하고, 오픈AI 주요 인력들도 따라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픈AI의 일부 인력을 구글, 메타, 테슬라 등 다른 빅테크 기업이 흡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시간을 버는 것은 맞지만, 올트먼의 MS 합류로 직원들도 따라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MS나 다른 기업이 비영리 조직인 오픈AI보다 AGI 상용화를 더 확대하고 서두를 것이기 때문에 국내 AI 기업들에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도 “올트만이 MS로 가더라도 오픈AI의 개발 소스코드나 지식재산권을 그대로 다 쓸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발전 속도가 지금보다 크게 늦춰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픈AI 직원들이 현실적인 거버넌스 구조를 갖춘 조직에서 일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