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내 얼어붙었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D램 설비투자가 재개될 전망이다. 낸드플래시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내년에 보수적인 투자 집행이 예상되지만,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인공지능(AI) 관련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가 늘고 있는 D램의 설비투자 규모는 상향 조정되고 있다.
21일 반도체 업계와 시장조사업체 옴디아 자료 등을 종합하면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는 올해 내내 이어졌던 D램 감산 기조를 사실상 내년부터 정상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올해 대비 10% 이상 투자 규모를 줄이기로 했던 기존 방침을 바꾸고 설비투자도 2% 수준에서 늘릴 것으로 관측됐다.
◇ D램, 10나노 이하로 진보하면서 3D 구조 도입 필수
옴디아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D램 주요 제조사들이 대부분의 설비투자 자금을 10나노대 초반에서 10나노 이하로 공정전환을 앞당기는 데 사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과 함께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HBM 제품에 탑재되는 D램 공정 고도화에 투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HBM에는 범용으로 생산되는 일반 D램과 다르게 누설 전류를 최소화하고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품이 선별돼 들어간다. HBM의 경우 세대가 높아질수록 발열이 심해지고 전력 소모량이 커진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정 스텝(단계)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여기에 HBM 공정의 핵심인 TSV(실리콘관통전극) 공정은 높은 단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갖춰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D램 생산공정에도 구조적 변화가 필요해지고 있다. 반도체 공정 미세화로 소자 간 거리가 짧아지면서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모두 미세화에 따른 누설전류 최소화를 위해 새로운 공법을 도입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0나노 이하로 D램이 진보하면서 셀 미세화의 물리적 한계에 의해 3D 구조 도입이 필수가 됐다”며 “이를 위해서는 트랜지스터 공정을 일정하게 만드는 에피(EPI)층을 형성하는 추가 공정이 필요해진다”고 설명했다.
◇ ‘호황 사이클’ 대비 분주… 공급자 중심으로 시장 재편
올 4분기 들어 D램 재고가 줄어든 데 이어 가격마저 상승하면서 반도체 업황 반등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과잉 재고로 헐값에 팔리던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으며,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가격 협상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공급자 중심 시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10월 D램 고정거래가격은 PC용 DDR4을 비롯해 최첨단 D램 규격인 DDR5 제품 등 10개 품목이 전월 대비 10% 이상 상승했다. 낸드플래시 고정거래가격 역시 오름세다. 메모리카드·USB용으로 활용되는 128Gb 멀티레벨셀(MLC) 낸드플래시의 이달 고정거래가격은 3.88달러로 27개월간 이어진 하락세를 뚫고 전월 대비 1.59% 상승했다.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은 새로운 반도체 호황 사이클에 오르기 위한 작업에 분주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AI, 고성능 컴퓨팅 시장 성장에 대응하는 고성능·고용량 메모리 생산 라인 확대에 집중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챗GPT 등 생성형 AI 시대에서 주목받는 HBM 생산능력을 내년까지 현재의 2.5배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HBM 시장에서 초반 승기를 잡고 있는 SK하이닉스도 프리미엄 제품 위주로 설비투자에 집중할 방침이다. 김우현 SK하이닉스 담당은 “올해 대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시장 수요를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를 계속해 프리미엄 시장을 선도해 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