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택이 반짝이는 복도를 따라 기계음이 울려 퍼진다. 로봇들은 데이터센터 내부의 자동문을 통과한다. 마치 체스판 위를 움직이는 말처럼 정교하게 3.2미터(m) 높이의 서버 랙 사이를 이동한다. 인간 엔지니어가 손을 대기 어려운 공간에서도 빈틈없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다.
지난 6일 가동을 시작한 네이버의 두 번째 자체 데이터센터 ‘각 세종’을 다녀왔다. 네이버의 첫 번째 자체 데이터센터 ‘각 춘천’이 네이버 서비스만을 위한 곳이었다면, 각 세종은 네이버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와 외부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전진 기지다.
세종특별자치시 행복대로 824번지에 위치한 각 세종 입구에 들어서자 마치 할리우드 영화 속에나 있을 법한 거대한 미래형 회색빛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축구장 41개 크기인 29만4000m2(제곱미터) 부지 위에 자리잡은 각 세종은 단일 기업 데이터 센터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60만 유닛(Unit, 서버의 높이 단위규격)의 서버를 수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립중앙도서관 전체 데이터의 약 100만배에 달하는 수준인 65엑사바이트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는 “초대규모 AI와 같이 고성능 연산 처리에 최적화된 GPU(그래픽처리장치)를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운영하고 있으며, 슈퍼컴퓨터가 클러스터 형태로 대량 구축된 사례도 네이버가 유일하다”면서 “현재 오픈된 공간은 각 세종 전체 규모의 1/6에 불과하며, 향후 기술 발전과 데이터 증가량에 따라 인프라와 공간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지진을 대비해서는 원자력발전소 수준의 건물에 적용하는 특등급 내진 설계를 건물 구조체 뿐 아니라 서버랙 단위까지 적용했다. 이는 일본 후쿠시마 지진 강도에 해당하는 진도 9.0, 규모 7.0 수준의 지진에도 안전한 것으로 평가받는 등급이다.
김재필 네이버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엔지니어링 리더를 따라 운영동 건물 3층에 자리한 각 세종의 심장부 관제센터를 방문했다. 이 곳은 안정적인 데이터센터 운영과 출입 통제를 담당하는 공간이다. 10여명의 인원이 대형 모니터 12대에 둘러앉아 각자 맡은 영역을 집중 모니터링하는 모습은 다른 데이터센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 세종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는 바로 운영동 건너편에 있는 서버동의 로봇이다. 로봇이 서버 랙 안팎을 분주히 오가며 데이터센터 운영 경쟁력을 한 차원 높이고 있다. 흔히 공상영화 속에서나 상상했던 모습이 각 세종 안에서 현실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서버동에는 네이버랩스에서 자체 개발한 로봇 자동화 시스템이 구현됐다. 데이터센터의 핵심 자산인 서버를 꺼내고 삽입하며 관리하는 로봇 ‘세로’와 서버실과 창고를 오가며 고중량의 자산을 운반하는 로봇 ‘가로’가 주인공이다.
이 로봇들은 복잡한 서버 랙을 유연하게 오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서버 랙 높이가 3.2m인데 로봇 또한 같은 높이로 설계돼 사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높은 공간까지 서버의 설치와 교체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김 리더는 “네이버 데이터센터의 특징적인 부분은 로봇이 돌아다닐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라며 “GPS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로봇의 현재 위치와 경로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로봇의 이동과 태스크 수행을 위한 계획과 처리를 대신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로봇의 움직임에 맞춰 서버동의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혔다. 이들은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서로 통신하며 작업을 조율하고 서버를 정밀하게 제어한다. 김 리더는 “현재 세로 로봇과 가로 로봇은 각각 2대씩 운영 중인데 앞으로 수요에 맞춰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가로 로봇은 약 3.5인치 높이의 2U 서버 최대 7개를 동시에 실어 이동할 수 있다. 서버 7개를 실은 무게는 400kg에 달한다. 로봇은 자율주행으로 데이터센터 서버동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이를 운반한다. 엔지니어는 서버의 배선 작업만 담당하면 돼 서버 설치 및 유지보수 작업 시간을 이전보다 최대 50% 단축했다.
김 리더는 “로봇은 서버의 종류와 상태를 구분해 유연하게 움직이며 데이터센터 내 여러 장소로 이동시킨다”며 “이를 통해 24시간 스케일업 자동화가 가능해졌다. 로봇이 없었다면 현재 각 세종의 인원 130명만으로 데이터센터 운영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세종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기술은 바로 무인 자율주행 셔틀 서비스다. 데이터센터 내부의 빠른 이동을 위해 직원들은 키오스크에서 목적지를 설정하고 자율주행 셔틀 ‘알트비’를 호출할 수 있다. 현재 알트비 2대가 운영 중이고 순차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각 세종은 자연과 공존하는 친환경 데이터센터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각 세종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공조 시스템인 나무(NAMU, NAVER Air Membrane Unit) 설비를 활용해 자연 바람으로 24시간 돌아가는 서버실을 냉각한다. 각 세종에 적용된 나무는 3세대 공조설비로, 각 춘천에서부터 쌓아온 10년 이상의 경험과 노하우를 반영해 세종시의 기후 변화에 맞게 직·간접 외기를 적절히 냉방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김 리더는 “각 세종은 국제 친환경 건물 인증 제도인 LEED에서 데이터센터로는 세계 최고 점수인 95점을 받아 LEED v3 플래티넘을 획득한 ‘각 춘천’보다 한 단계 더 엄격한 LEED v4 플래티넘 획득에 도전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각 세종의 외벽에 친환경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등 자재부터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각 세종은 현재 오픈한 크기에서 최대 6배 더 확장될 예정이기 때문에 로봇과 자율주행을 활용한 운영 효율화 역시 미래의 10년을 먼저 생각하고 대비한 것”이라며 “1784가 첨단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한 오피스 공간이라면, 각 세종은 미래 산업 현장의 새로운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