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시장이 '빅3 법칙'에 갇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빅3 법칙은 미국 경영학자 자그디시 세스와 라젠드라 시소디어가 주장한 것으로 정부 등 인위적인 외부 개입이 없을 경우, 3개사가 경쟁하는 체제가 가장 효과적이며 생산성이 높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통신처럼 내수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산업에서는 '3개 업체가 시장을 장악해 경쟁 촉진이 일어나지 않는 현상'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20년째 독과점 체제가 이어진 국내 통신 시장이 빅3 법칙의 부작용이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통신 시장 과점 해소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올해(1월~10월) 통신 3사 내 '번호 이동'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오히려 7000명 이상 감소했습니다. 통신 시장 내 경쟁이 더욱 정체됐다는 의미입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의 '이동전화 번호 이동자 수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알뜰폰을 제외한 통신 3사 내 번호 이동 건수는 192만2659명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192만9652명)보다 더 줄어든 것입니다. 번호 이동은 쓰던 휴대폰 번호는 그대로 두고 가입 통신사만 다른 곳으로 바꾸는 제도를 말합니다. 번호 이동 건수는 통신 시장에서 회사 간 경쟁 활성화를 가늠하는 수치로 활용됩니다. 소비자들이 휴대폰을 바꾸거나 통신사 약정이 끝날 때 그동안 쓰던 통신사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조금이나 요금을 할인해 주는 통신사로 갈아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휴대폰을 교체하는 소비자가 줄어들 수 있지만, 통신사들이 타사 가입자를 유치하는 보조금 경쟁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평가가 더 많습니다.
지난 7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신 시장 경쟁 촉진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통신 시장의 95%를 점유 중인 SK텔레콤·KT·LG유플러스의 독과점 체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후발 사업자를 육성하겠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고착화된 통신 시장에 메기를 넣어 통신 3사의 경쟁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장 상황은 정부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실제 통신 3사의 지난해 마케팅 비용은 7조9000억원으로 2021년(8조1000억원) 대비 2.5% 줄었습니다. 통신 3사의 올해 마케팅 비용은 이보다 더 줄어들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습니다. 통신 3사 입장에서는 포화상태에 접어든 통신 시장에서 가입자 수를 늘리기보다 기존 가입자를 지키는 게 더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LTE(4세대 이동통신) 대비 1.5배 요금이 비싼 5G(5세대 이동통신)로의 전환이 빨라지면서 통신 3사가 가만히 있어도 돈을 버는 구조가 됐습니다.
'단통법'이라 불리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도 통신 3사 간 경쟁을 위축시키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단통법이 통신사 간 지원금 경쟁을 제한하면서 단말기 구입가가 올라 소비자 부담만 커졌기 때문입니다.
알뜰폰이 통신 3사의 독과점 체제를 깰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올 들어 68만386명이 통신 3사에서 알뜰폰으로 옮겨 갔지만, 알뜰폰 시장은 통신 3사 자회사가 48%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기업 간 경쟁이 사라지면 손해는 소비자에게 돌아옵니다. '무늬만 5G'인 서비스를 내놓고도 통신 3사가 1조원이 넘는 분기 영업이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은 비정상적인 시장 구조 때문입니다. 정부는 통신 시장의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통신 3사의 경쟁 위축이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줄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통신 서비스 개발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