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신도림테크노마트 내 휴대폰 매장./뉴스1

은행원 장유민(33)씨는 최근 출고가가 139만9200원인 삼성 갤럭시Z플립5를 자급제폰(가전매장 등에서 구입할 수 있는 통신 개통이 안 된 휴대폰)으로 구입했다. 통신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휴대폰 할부 수수료율이 연 5.9%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장씨는 “많은 사람들이 0.1%의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데 통신사는 앉아서 휴대폰 할부 수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무조건 일시불 또는 무이자 자급제폰을 구입할 것을 권하고 있다”라고 했다.

휴대폰 할부 수수료는 통신사를 통해 휴대폰을 구입할 때 단말기 값을 매월 나눠 내는 대신 물어야 하는 수수료를 말한다. 통신사는 원리금 균등 상환 방식으로 연 5.9%의 이자율을 적용해 소비자에게 청구한다. 갤럭시Z플립5를 24개월 할부로 구입하는 조건으로 매월 할부 이자를 부과하는 것이다. 통신 3사에서 갤럭시Z플립5을 구입한다면 24개월간 추가로 내야 하는 할부 수수료는 10만원 정도가 된다.

5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휴대폰 할부 수수료를 연 5.9%로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2009년 SK텔레콤이 휴대폰 할부 수수료를 연 5.9%로 정한 뒤 2012년 LG유플러스, 2017년 KT가 같은 수수료율을 책정했다.

◇ 휴대폰 할부 수수료 부담 폰플레이션으로 더 커져

휴대폰 할부 수수료 부담은 최근 폰플레이션(폰+인플레이션) 영향으로 더 커지는 추세다. 할부 수수료는 출고가가 높을수록 늘어난다. 일례로 출고가가 115만5000만원인 갤럭시S23 일반 모델의 할부 수수료(24개월 약정)는 7만2320원이지만 갤폴드5(출고가 209만7700원)의 할부 수수료는 13만1340원에 달한다. 출고가가 250만원인 아이폰15 프로 맥스(1TB 용량)의 할부 수수료는 15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통신사를 통해 휴대폰을 가입한 소비자라면 월 평균 3000~4000원 정도를 휴대폰 할부 수수료로 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픽=정서희

통신 3사의 휴대폰(고객용) 가입자 수는 지난 7월 기준 5200만명에 달한다. 통신 3사 가입자의 80%가 여전히 통신사를 통해 휴대폰을 구입하는 걸 감안하면 통신 3사는 연간 휴대폰 수수료로만 1조5840억원(4400만명x3000원x12개월)을 거두고 있다.

통신사들은 휴대폰 할부 수수료에는 단말기 대금 미납을 대비해 가입하는 보증 보험료, 금융사에 주는 할부채권 비용, 관리 비용 등이 포함된 만큼 자신들이 가져가는 비용은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휴대폰 할부는 담보와 신용 없이 제공되기 때문에 단순히 1금융권 대출 금리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보증 보험료와 할부채권 비용만 합쳐도 수수료가 연 6%에 달한다”면서 “통신 3사의 휴대폰 할부 수수료가 연 5.9%로 똑같은 건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맞춰진 것일 뿐 담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소비자단체 “소비자에게 더 큰 부담… 제도 개선 필요”

정부는 2021년 기준금리가 0%대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통신 3사가 과도하게 높은 휴대폰 할부 수수료를 물리고 있다는 국회의 지적이 계속되자 실태조사에 나섰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휴대폰 할부 수수료와 관련해 실태조사와 통신사와의 협의를 예고했지만 이후 달라진 건 없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같은 해 통신 3사의 휴대폰 할부 수수료율 담합 여부 조사에 착수했지만, 아직까지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가계통신비 부담의 주범으로 고가의 휴대폰 가격이 거론되는 만큼 휴대폰 할부 수수료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휴대폰 할부 수수료는 통신사에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취지로 운용돼야 하는데, 현재는 소비자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면서 “제도 개선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