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사람들이 우울한 날 블루시그넘의 ‘하루콩’과 ‘무디’를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모바일 앱으로 출발했지만 앞으로는 인공지능(AI) 스피커 등을 통해 어린이와 노년층까지 접근성을 높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건강 관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게 목표입니다.”
하루콩은 콩 모양의 이모티콘을 터치해 그날의 감정을 기록하는 일기앱이다. ‘신나는’ ‘편안한 ‘뿌듯한’ ‘외로운’ ‘불안한’ 등 감정 이모티콘을 16개로 구분, 사용자가 하나 또는 복수의 감정을 기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날의 기분이나 겪었던 일을 한 줄로 메모할 수 있으며 사진도 추가할 수 있다.
매우 간단한 앱이지만 MZ세대를 중심으로 ‘찐팬’을 확보하며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2021년 3월 출시 후 불과 2년 반 만에 176개국에서 누적 다운로드수 675만건을 돌파했다. 전체 앱 이용자 가운데 89%가 해외 이용자일 만큼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다.
블루시그넘이 최근 출시한 심리가이드 앱 ‘무디’도 정식 출시 4달 만에 15만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무디는 사용자의 감정 기록을 바탕으로 다양한 심리치료 콘텐츠를 제공한다. 체험판 버전은 지난 3월 출시됐는데 출시 한 달 만에 미국 구글플레이 신규 건강 앱 10위, 한국 구글플레이 신규 건강 앱 1위에 올랐다. 무디 역시 해외 사용자가 80%에 달한다.
‘하루콩’과 ‘무디’를 개발한 블루시그넘의 윤정현 대표(26)를 지난달 22일 서울 관악구 블루시그넘 사무실에서 만났다. 서울대 자율전공학부에서 경영학과와 기계공학을 전공한 윤 대표는 “우울하고 힘든 사람들이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는 것을 보면서 정신건강 관리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 하루콩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 대표가 처음부터 모바일 앱 개발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그는 “2019년쯤 일본 소니의 ‘아이보(AIBO)’라는 로봇 강아지를 보고 대학 친구들과 ‘우리가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서 “동기 1명, 후배 1명과 함께 반려로봇인 펭귄 로봇을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주변 지인들을 여럿 인터뷰했다”고 말했다. 아이보는 1999년 처음 출시됐는데 지난 2018년에는 딥러닝 기술을 탑재한 업그레이드 버전이 나왔다. 주인과 생활하며 축적한 정보를 클라우드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이를 토대로 상호 작용하는 능력을 높인 인공지능(AI) 로봇이다.
윤 대표는 “외로움을 달래주는데 반려로봇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지인들을 인터뷰했는데 알고 보니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보건복지부 정신질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심리적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우울·불안 장애를 진단받은 사람은 900만명에 달하는데,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 중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고작 20%에 불과하다.
‘블루시그넘’이라는 사명에도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블루’는 영어로 우울한 감정, ‘시그넘’은 라틴어로 신호를 뜻한다. 사람들의 우울한 신호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겠다는 뜻이다. 불꽃 색깔 중 파란색이 가장 따뜻한 색깔로 알려져 있어 사람들에게 가장 따뜻하게 응답하겠다는 의지도 담았다.
블루시그넘은 작년 2월 구글 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1기로 선정됐다.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지닌 시드 및 시리즈A 단계의 스타트업을 선발해 기술 및 역량 개발을 지원해주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올해에는 구글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마련한 창구 프로그램 5기에 선정됐다. 최근에는 13억원 규모의 프리시리즈A 투자도 유치했다. 한국투자파트너스가 신규로 참여했고 기존 투자자인 스프링캠프가 후속 투자를 했다. 앞서 DHP(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와 매쉬업엔젤스 등에서도 초기 투자를 받았다. 누적 투자유치 금액은 21억원이다.
윤 대표는 “하루콩과 무디가 질병 자체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치료 보조수단으로는 유용하다”고 했다. 하루콩의 경우 감정 관리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에 가깝고,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 환자들이 일상 기록을 모아두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디 서비스를 준비하며 치료 효과가 있는 이론들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1200개의 모듈을 확보해 이용자가 느끼는 감정과 관련 이슈에 따라 원인별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하루콩도 더불어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그는 “실제 정신과 전문의가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가이드를 제공하는지 파악해 앱에 적용했다는 게 다른 경쟁 앱과의 가장 큰 차별점”이라며 “정신과 전문의, 서울대 임상심리 전문 교수진, 상담심리 전문가 분들과 협업해 앱을 개발하고 자문받고 있다. 회사에도 상담심리 전문가를 직원으로 모셔왔다”고 했다. 경쟁 앱들이 명상 영상 등 일방향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그친다면, 무디는 사용자의 특성을 반영해서 맞춤형 심리치료 방법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또 “알코올 중독 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장하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과 협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블루시그넘에 자문을 해주시는 정신과 전문의도 ‘환자들이 하루콩 앱을 보여주며 상담을 받더라’고 하셔서 처음 연락하게 됐다”며 “알코올 중독 치료 프로그램이 알코올 수준을 기록하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하루콩이 이 지표들을 기록하는 토대가 되는 것은 물론 기록을 분석하는 도구로도 확장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알코올 중독 외에도 무디의 주제를 점점 확장해나가려고 하는데 사용자들이 원하는 주제를 앱 내 건의함에 남겨주면 적극 반영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하루콩과 무디의 사용자 연령대는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가 80~90%를 차지한다. 윤 대표는 “앱을 통해 감정적인 기록을 남기거나 가치를 얻는 것에 대해 젊은 연령층 분들은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이보다 더 어린 친구들이나 노년층까지 접근성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AI 스피커 소프트웨어를 내년 출시 목표로 개발 중인데,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고 덧붙였다. 침대 옆에 스마트폰을 두고 편하게 ‘오늘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AI 스피커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