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20배 빠르다’고 했던 5G(5세대 이동통신)가 사실상 반쪽짜리 서비스로 전락했다. 연간 4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통신 3사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28㎓ 주파수를 반납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당초 통신 3사가 약속한 속도에 한참 못 미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LTE보다 비싼 요금을 내야 하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는 통신 3사가 장악한 통신 산업이 2002년 이후 과점 구조로 굳어져 시장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격에 의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시장실패’ 상태에 있는 통신 산업을 진단해 본다.[편집자주]

일러스트=정서희

#직장인 이진광(34)씨는 지난 4월 중소 알뜰폰 업체 유니컴즈가 제공하는 ‘모빙 데이터 15G+’에 가입했다. 이 요금제는 한 달에 3만2300원을 내면 15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를 쓸 수 있다. 현재 이씨에게 청구되는 요금은 ‘0원’이다. 가입 당시 7개월간 요금을 내지 않는 ‘0원 요금제’로 판매되면서다. 그런데 해당 요금제를 포함해 인기를 끌었던 알뜰폰 업체의 ‘0원 요금제’는 한동안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통신 3사가 알뜰폰 업체에게 지급하던 가입자당 20만원 수준의 영업 보조금을 절반 수준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서동선(52)씨는 월 4만1500원을 내는 KT엠모바일의 ‘5G 모두 다 맘껏 110GB+’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다. 그가 한 달에 사용하는 데이터 양은 40기가바이트(GB) 정도지만 지방 출장시 휴대폰 테더링으로 고용량 사진을 전송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4만원 이하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도 있지만 QoS(데이터 소진 후 제한 속도)를 1Mbps 이하로 제한해 카카오톡을 겨우 확인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알뜰폰 업체들은 통신 3사의 망을 빌려 쓰기 때문에 데이터 제공량과 QoS를 자신들이 마음대로 설계할 수 없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자회사를 앞세워 알뜰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KT엠모바일, KT스카이라이프, LG헬로비전, 미디어로그, SK텔링크의 알뜰폰 요금제부터 할인 혜택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상황이다. 통신 3사는 자사가 보유한 망을 알뜰폰 업체에 빌려주기 때문에 ‘슈퍼 갑(甲)’ 역할을 한다. 김형진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회장(세종텔레콤 회장)은 “통신 3사가 영업 보조금과 도매대가(통신 3사가 알뜰폰 업체에 제공하는 통신망에 대한 사용료)를 통해 알뜰폰 시장을 사실상 조종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래픽=정서희

◇ 통신 3사 자회사는 ‘흑자’… 중소 알뜰폰 회사는 ‘적자’

12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통신 시장 경쟁상황 및 경쟁촉진을 위한 논의 방향’에 따르면 2021년 기준 KT엠모바일, KT스카이라이프, LG헬로비전, 미디어로그, SK텔링크 등 통신 3사가 보유한 5개 자회사의 알뜰폰 시장 매출 점유율은 60%가 넘는다. 엄밀히 말하면 알뜰폰 시장 역시 통신 3사가 좌지우지하고 수익을 독차지하는 구조인 것이다. 때문에 통신 3사는 전체 통신 서비스 매출의 97.9%를 점유하고 있다.

통신 3사의 알뜰폰 자회사와 중소 알뜰폰 업체의 실적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KT의 자회사이자 알뜰폰 업계 1위인 KT엠모바일의 지난해 매출은 2624억원이다. 이는 중소 알뜰폰 업체 중 규모가 가장 큰 세종텔레콤(684억원)보다 4배가 많다. KT엠모바일이 영업이익 78억원을 거둔 반면 세종텔레콤은 영업손실 55억원을 기록했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텔링크와 모빙을 운영하는 유니컴즈를 비교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SK텔링크의 매출은 3026억원으로 유니컴즈(598억)의 5배에 달한다. 영업이익은 SK텔링크가 187억원으로 유니컴즈(25억원)보다 7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정부는 2014년 통신 3사 자회사의 알뜰폰 시장 진입을 허가하면서 합산 점유율 50% 이내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 조건이 유명무실한 상태다. 통신 3사 자회사의 회선 수 50% 제한은 진입 허가 당시 조건일 뿐, 현재 점유율이 50%가 넘는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철수를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다. 2021년 국회와 정부를 중심으로 통신 3사 자회사의 알뜰폰 시장 점유율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통신 3사가 알뜰폰 시장 철수 등을 앞세워 반발하면서 법제화에 실패했다. 김주형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은 “통신 사업은 공공 서비스적 성격이 강한 만큼 알뜰폰 시장에서 통신 3사의 자회사를 완전히 퇴출해 원가 수준의 도매대가 제공을 의무화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 “알뜰폰은 LTE서 놀고, 5G는 넘어오지 말라”

통신 3사는 통신망 사용료에 해당하는 도매대가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무제한 요금제의 QoS 속도 제한 등으로 알뜰폰의 5G(5세대 이동통신) 시장 진출을 사실상 막고 있다. 돈 되는 5G는 자신들이 차지하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LTE(4세대 이동통신)만 알뜰폰 업체에 내주는 식이다. 사실상 알뜰폰의 5G 요금제 출시를 통신 3사가 방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 5G 가입자 수가 3100만명(지난 7월 기준)을 넘어선 상황에서도 알뜰폰 가입자 수는 28만명(0.9%) 수준에 머물고 있다. 통신 3사가 알뜰폰에 제공하는 5G 도매대가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통신 3사가 알뜰폰에 LTE 망을 제공하고 받는 수익배분율(망 사용대가)은 40% 수준이다. 반면 5G 요금의 수익배분율은 60%가 넘는다. 쉽게 말해 알뜰폰이 소비자에게 월 3만원짜리 LTE 요금제를 판매할 경우 통신 3사는 가만히 앉아서 40%에 해당하는 월 1만2000원을 받는다. 그런데 같은 금액의 5G 요금제가 팔리면 통신 3사는 알뜰폰 업체보다 많은 1만8000원을 망 사용대가로 가져간다. 알뜰폰 가입휴대폰 회선 수가 823만명(지난 7월 기준)을 넘어선 걸 감안할 때 단순 계산해도 통신 3사는 매월 망 사용대가로만 약 1000억원을 벌고 있는 셈이다.

중소 알뜰폰 업체 한 임원은 “통신 3사는 알뜰폰을 향해 ‘너희는 LTE에서만 놀고, 5G는 넘어오지 말라’는 명확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라며 “LTE 대비 1.5~1.8배 비싼 5G 도매대가, QoS(데이터 소진 후 제한 속도) 제한 등이 통신 3사가 알뜰폰의 5G 시장 진입을 막는 대표적인 사례다”라고 했다.

◇ 통신 3사 장벽에 막혀 이마트·홈플러스 알뜰폰 사업 실패

통신 3사가 장악한 통신 시장은 이종 산업군에 속한 대기업들의 진출도 막고 있다. 2013년 KT와 LG유플러스 망을 빌려 알뜰폰 사업을 시작했던 이마트가 4년여 만에 알뜰폰 사업을 접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 이마트는 30만원 이상 쇼핑시 통신비 3000원을 할인해 주는 혜택 등을 제공하면서 8만명의 가입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적자가 쌓이면서 철수했다. 홈플러스도 이마트와 같은 해에 알뜰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적자를 벗어나지 못해 2년여 만에 알뜰폰 시장을 떠났다.

KB금융의 알뜰폰 서비스 ‘리브모바일’의 경우 2019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알뜰폰 서비스를 시작했다. 리브모바일은 알뜰폰 업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내놓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지만 가입자 수(40만명) 정체 상황에서 빠진 상태다. 올해 초 시장에 뛰어든 비바리퍼블리카의 알뜰폰 서비스 토스모바일 역시 잔여 데이터를 캐시백으로 받을 수 있는 환급 제도로 기대를 모았지만, 통신 3사의 망을 빌려 쓴다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통신은 통신망 보유 여부에 따라 사업 경쟁력이 결정되는 산업인 만큼 앞으로도 통신 3사의 독과점 체제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통신 3사가 막대한 투자금으로 독과점 체제를 구축, 어떤 대기업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산업 구조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김용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현재와 같이 통신 3사가 통신망을 구축, 독과점 체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다른 대기업이 시장에 들어와도 메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없다”라며 “위성 통신을 활용하는 해외 통신사 유치 등 전향적인 관점에서 통신 시장을 개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