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20배 빠르다’고 했던 5G(5세대 이동통신)가 사실상 반쪽짜리 서비스로 전락했다. 연간 4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통신 3사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28㎓ 주파수를 반납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당초 통신 3사가 약속한 속도에 한참 못 미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LTE보다 비싼 요금을 내야 하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는 통신 3사가 장악한 통신 산업이 2002년 이후 과점 구조로 굳어져 시장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격에 의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시장실패’ 상태에 있는 통신 산업을 진단해 본다.[편집자주]

2019년 4월 5일 오전 통신 3사가 전국 대리점과 온라인몰에서 5G(5세대 이동통신) 스마트폰 판매와 서비스 개통을 시작했다. 이날 오전 서울 SK텔레콤 강남직영점에 5G 서비스에 가입하려는 고객들이 긴 줄을 섰다./SK텔레콤

2019년 4월 8일 서울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공원 K-아트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날 ‘세계 최초 5G 상용화, 대한민국이 시작합니다’ 행사에서 “5G 전국망을 2022년까지 조기에 구축하겠다”고 했다. 축하공연에서는 초고속·초저지연·초연결 기술을 표현했다. K-아트홀 무대 위에 올라온 무용팀이 무대 뒤 대형 스크린 속 부산, 광주 연주팀과 호흡해 ‘3각 원격 협연’을 펼친 것이다. 5G 기반 초고화질 실시간 중계 기술 덕분에 시공간을 넘나드는 연출이 가능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2019년 4월 3일, 미국·일본·중국 등을 제치고 가장 먼저 5G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북미 최대 통신사 버라이즌이 ‘세계 첫 5G 상용화’를 노린다는 소식에 예정보다 일정을 이틀이나 앞당겨 불과 2시간 차이로 ‘세계 첫 5G 상용화 국가’라는 타이틀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4년 후 소비자들은 LTE 대비 고작 5.9배 빠른 무늬만 5G 서비스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말 실시한 ‘통신서비스 품질 평가’에 따르면 국내 5G 다운로드 전송 속도는 896.1메가비트(Mbps)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초고속 실시간 통신이 필수적인 자율주행은 꿈도 못 꾸는 통신 속도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시절과 대통령 취임 직후 공식석상에서 5G를 ‘오지’라고 읽었는데, 그의 말이 예견이라도 한 듯 ‘오지(奧地)된 5G’라는 조롱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통신 3사는 5G 서비스를 시작한 2019년 4월 속도를 강조하며 대대적인 선전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이 고객들에게 했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들은 대신 LTE보다 비싼 5G 요금 청구서를 고객에게 안겼고, 5G 휴대폰을 신규로 개통할 때 LTE 요금제에 가입하지 못하게 했다. 자신들에게 이익이 많이 남는 5G 요금제로 전환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법조계에서 ‘약탈적 요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통신 3사는 5G 가입자 수 확대에 힘입어 2년 연속 영업이익 4조원대를 기록했고, 올해도 실적 잔치를 벌이고 있다. LTE는 최저요금제가 3만원대부터, 5G는 4만원대부터다. 고물가 시대에도 가계 통신비는 5G 상용화 여파로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국내 가구당(1인 가구 이상) 통신비 지출은 올해 상반기 기준 월평균 12만6111원이다. 2020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5G 가입이 늘면서 7.1% 증가했다.

그래픽=정서희

◇ 뿔난 5G 가입자들 “소비자 속이고 가입자 유치” 주장… 3사 독과점 구조로 ‘시장 실패’

뿔난 5G 가입자들은 “5G와 LTE 요금 간의 차액을 돌려달라”라며 지난 2021년 6월 통신 3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지금까지 소송에 참여한 가입자만 1000명에 달한다. 소송을 담당하는 김진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통신 3사는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내지 못할 것을 알고도 소비자를 속이고 가입자를 유치한 것은 물론 이를 전제로 비싼 약탈적 요금을 받았다”라며 “소비자에게 고지한 것과 달리 진짜 5G로 보기 어려운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사업자가 채무를 불이행한, 명백한 불법행위이자 사기”라고 주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올해 5월 “통신 3사가 5G 서비스에 대해 ‘LTE보다 20배 빠르다’고 거짓 과장을 하고 기만적으로 광고했다”라며 이들에게 총 33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통신 3사는 “이론상 최고 속도”라는 변명으로 맞서고 있다.

오세형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 부장은 “통신 3사의 5G 서비스는 ‘무늬만 5G’ ‘사실상 사기’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라며 “통신 3사가 제대로 된 5G 서비스를 제공할 의지가 없으며, 이는 3사의 독과점 구조가 갖고 온 ‘시장 실패’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 역시 제대로 된 5G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견인차 역할과 정책적 노력을 했는지, 보이는 것(세계 최초 5G 상용화)에만 급급한 게 아닌지 실망스럽다”라고 덧붙였다.

◇ 투자 제대로 안하니 ‘5G 준비지수’ 6위에 그쳐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실망스러운 5G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5G의 주파수 대역은 크게 28㎓와 3.5㎓로 나뉜다.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는 28㎓ 주파수에서 구현 가능하다. 통신 3사는 2018년 당시만 해도 6223억원의 주파수 대가를 지불하면서 28㎓ 주파수를 확보하는 데 열을 올렸다. 하지만 통신 3사는 이후 태도를 바꿔 “28㎓는 현실적으로 구축 비용도 많이 드는데 이를 지원하는 기기도, 수요도 없어 수익 모델이 안 나온다”면서 사실상 투자를 포기했다. 그 결과 정부는 28㎓ 주파수를 회수하게 됐고, 통신 3사는 투자 부담에서 벗어나게 됐다.

한국은 ‘세계 첫 5G 상용화 국가’ 타이틀은 가져왔지만 미완의 5G 서비스로 네트워크 강국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이탈리아,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전 세계 23개국이 28㎓ 이상 초고주파 대역 주파수 할당 국가 목록에 이름을 올릴 때 목록에서 이름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미국 컨설팅 회사 키어니가 지난 6월 5G를 상용화한 33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5G 준비지수’ 평가에서도 한국은 6.9점을 기록하며 호주와 함께 공동 6위에 머물렀다. 1위는 미국(8.4점)이 차지했다. 그 뒤를 싱가포르(7.6점), 핀란드(7.3점), 일본·노르웨이(7.1점)가 이었다. 키어니는 “5G 상용화 정도는 물론 통신사가 5G를 지원하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상품, 사설 네트워크를 판매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봤다”라며 “나아진 5G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도 봤다”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통신 3사의 적극적인 5G 투자를 독려하지 못한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통신 3사의 설비투자는 2020년부터 3년 연속 8조2000억원대에 머물고 있다. 김주형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은 “정부가 ‘세계 최초’에만 신경을 쓰고 통신 3사가 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안했다”라며 “통신 서비스는 공공 자산 성격이 강한데, 이를 시장에만 온전히 맡겨 시장 실패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 美, 10만명 몰려도 잘 터지는 ‘5G’… 韓, 2000명에 먹통되는 ‘5G’

통신 3사는 28㎓ 주파수가 수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 사람들이 밀집한 지역(핫스팟)에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프로풋볼리그(NFL) 결승전 ‘슈퍼볼’이 열리는 미 로스앤젤레스(LA)에 위치한 소파이 스타디움이다. 최대 10만명까지 입장이 가능한 경기장에서 사람들은 사진과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찍고, 보내고 이를 온라인에 업로드한다. 통신 사용량이 집중되지만, 버라이즌의 5G를 쓰는 관람객들에게 불편함이 없다. 경기 중 다운로드 속도가 2.5Gbps(초당 기가비트)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국내 5G의 평균 다운로드 속도 0.410~0.464Gbps(영국 시장조사기관 오픈시그널 기준)보다 5~6배가량 빠른 셈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이와 정반대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는 네이버가 생성형 인공지능(AI) ‘하이퍼클로바X’ 공개 행사를 진행했다. 당시 2000명이 몰렸는데, 무선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동영상과 사진 전송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홍인기 경희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시장 발전과 소비자를 위해 5G 서비스가 3.5㎓와 28㎓ 주파수 대역으로 함께 가는 게 바람직하다”라며 “한국이 5G 세계 첫 상용화 국가라는 타이틀을 따고도 통신 3사가 28㎓ 대역을 일제히 포기하는 초유의 상태는 자칫 세계 무대에서 고대역 주파수를 활용한 서비스 기술을 이야기할 때 소외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 로스앤젤레스(LA)에 위치한 소파이 스타디움은 최대 10만명을 수용한다. 버라이즌이 5G 초고주파망을 설치한 덕에 사람들은 경기 관람 중 사진과 동영상을 끊김없이 공유할 수 있다./버라이즌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