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텔 본사 전경./인텔 제공

인텔이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이스라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타워반도체 인수를 포기하자 반도체 기업간 ‘빅딜’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힘을 쏟기 시작하면서 반독점 당국을 통해 거대 기업들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후공정, 파운드리,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텔, 타워반도체 인수 불발… “반도체 M&A 더 어려워질 것”

인텔은 지난 15일(현지시각) 타워반도체와 상호 합의해 양수도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텔은 지난해 2월 54억달러(약 7조2000억원)를 들여 타워반도체를 인수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주요 국가의 승인에 1년가량이 걸릴 것으로 보고 계약 기한을 올해 2월로 설정했다.

하지만 중국 시장 규제 관리국(SAMR)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합병 기한을 두 차례 연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승인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이 끝내 인텔의 타워반도체 인수를 허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외신들은 미국 정부의 대중 반도체 제재를 주된 원인으로 꼽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텔의 타워반도체 인수 실패를 국가간 반도체 기술 경쟁 심화가 불러온 상징적 사건으로 보는 분위기다. 인텔이 인수하려던 타워반도체의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1%대에 불과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기업들의 M&A 역시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미국 엔비디아는 영국의 반도체 설계자산 회사인 ARM 인수를 시도했으나 각국 규제당국의 반대에 막혀 인수를 포기한 바 있다. 당시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조사 결과 “경쟁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가 있다”며 반대의사를 내비쳤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역시 엔비디아의 인수로 ARM의 지식재산권(IP)이 침해되는지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중국 반독점 당국 역시 거래를 승인하지 않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인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엔비디아는 위약금을 내고 인수를 포기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반도체 기술이 경제안보와 연결되면서 특정 국가나 기업이 공급망을 독차지하는 결과를 회피하고 있다”며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실패를 봤을 때 서방 국가들도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면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대형 M&A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M&A 시급한 삼성전자… TSMC 추격 위한 동력 필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도 미중 갈등 국면에서 M&A 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3년 내 대형 M&A를 진행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후 코로나19 영향으로 시점을 한정하지 않겠다며 시기에 대해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M&A를 단행하겠다는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초 반도체 업계 M&A 전문가로 알려진 마코 치사리를 영입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시장 절대강자인 대만 TSMC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파운드리 분야 M&A도 필수적이다. 최근 첨단 반도체 수요와 고객사 확대를 위해 첨단 후공정(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M&A 후보군으로 세계 2위 패키징 기업인 앰코가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앰코의 경우 자동차 칩 패키징, 테스트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어 인수시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와 함께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서도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을 인수할 당시 중국 당국의 승인을 얻어내기까지 많은 고초를 겪었고, 중국 당국이 원하는 조건에 모두 동의해야만 했다”며 “최근에는 일본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역시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M&A 빅딜이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