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 기업 로고./AP 연합뉴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들의 격전지로 부상한 인공지능(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서 대만 TSMC의 독주를 따라잡기 위한 삼성전자, 인텔의 기술 투자가 한창이다. TSMC가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원동력인 2.5D 패키징 기술 확보를 위해 삼성전자와 인텔 모두 올해와 내년 사이 각각 신공정을 발표한다는 방침이지만, 10년 전부터 관련 기술을 확보한 TSMC의 노하우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7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올해부터 EMIB(Embedded Multi-die Interconnect Bridge)라는 이름의 2.5D 패키징 기술을 도입했으며, 삼성전자는 내년 2분기부터 아이큐브(I-CUBE)4라는 명칭으로 2.5D 패키징 양산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세 기업 모두 패키징 방식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관건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용 메모리로 각광받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인터포저(Interposer) 위에 안정적으로 실장할 수 있는지 여부다.

◇10년 앞선 TSMC의 2.5D 패키징 기술

인터포저란 로직 반도체인 GPU와 HBM을 2.5D 구조로 결합해 전기적 연결과 고속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별도의 회로 기판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반도체 칩은 개별적으로 패키징돼 인쇄회로기판(PCB)에 조립돼 왔지만, TSMC가 2D의 로직 프로세서와 3D 구조의 HBM을 한 번에 패키징하기 위해 중간에 인터포저를 활용하는 2.5D 패키징 공법을 도입한 후 AI 반도체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2.5D 패키징 기술이 어려운 이유는 복잡해진 인터페이스 때문에 재료, 가공, 설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결함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결과적으로 인터포저 기술이 칩의 수율과 성능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고 정교하게 칩을 패키징하면서도 저렴하게 만드는 것이 승패를 가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TSMC의 경우 지난 2012년 처음으로 2.5D 패키징 기술을 도입한 바 있다. 10년이 넘는 노하우가 쌓여있는 셈이다. 현재 엔비디아가 주문한 AI용 GPU를 TSMC가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발생하고 있는 병목현상은 수율보다 인터포저의 공급 부족 문제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TSMC는 기존 인터포저 생산능력이 부족해 경쟁사인 UMC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인터포저 기판 자체는 구공정인 55나노 공정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생산능력을 늘리는 것에는 문제가 없으며, 조만간 인터포저 부족으로 인한 품귀 현상도 사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텔·삼성전자도 첨단 패키징 기술 개발 속도

인텔의 첨단 패키징 공법인 EMIB 기술 이미지. /인텔 제공

인텔도 파운드리 시장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첨단 패키징 기술을 하나둘씩 채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7년 처음으로 발표한 EMIB라는 기술을 개발해 올해부터 양산 중이다. 인터포저를 일부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TSMC의 2.5D 패키징 기술과 비슷하지만, 패키지 면적을 줄이고 소비전력을 더 줄이는 아키텍처로 설계돼 있다. 또 TSMC의 2.5D 패키징과 달리 높은 비용을 요하는 ‘TSV(Through Silicon Via)’ 공정을 생략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인텔의 또 다른 신무기 중 하나인 ‘포베로스’ 공법은 수직으로 쌓아 올린 두 개의 프로세서가 서로 통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3D 패키징 기술이다. 올해부터 양산을 시작한 포베로스 다이렉트는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상용화한 사례로, 현재 패키징 기술 중 가장 진보한 형태로 꼽힌다. 둥근 돌기 모양 범프나 구리 기둥 모양 범프 없이 구리와 구리를 플라즈마 기술을 활용해 공유결합(covalent bond)해서 칩 영역 간격을 10㎛ 이하로 줄일 수 있다. 거리가 가까워지는 만큼 속도도 빠르고 전력 효율도 높아진다.

삼성전자도 2021년 ‘I-Cube(아이큐브)’라고 명명한 2.5D 패키징 기술을 선보였다. 첨단 패키징 기술인 I-CUBE 2.5세대는 얇은 인터포저를 사용해 GPU와 HBM을 묶는 기술로 TSMC의 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성능별로 공정을 세분화해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삼성전자는 올해 로직칩과 8개의 HBM을 구현한 I-CUBE8, 내년에는 12개의 HBM을 통합한 I-CUBE 12를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박준영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TSMC는 다년간의 양산 경험과 우수한 인터포저 기술, 높은 수율과 성능 등 여러 측면에서 (삼성전자나 인텔 등을) 앞서고 있다”며 “다만 인텔의 후공정 기술도 TSMC에 견줄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도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서 이종접합 칩을 하나의 파운드리 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생산해낼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