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발(發) 기상이변으로 일기예보의 정확도가 중요해지면서 글로벌 IT 기업들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기상예측모델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 산업에 걸친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선점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이 분야 선도 기업은 IBM이다. IBM은 2016년 미국 최대 기상정보업체 웨더컴퍼니를 인수, 2018년 AI 기반 고해상도 기상예측모델 ‘그래프’를 선보였다. 그래프는 세계 전 지역을 3㎢ 단위로 나누고, 각각의 지역에서 매시간 수집한 기상정보를 분석해 최대 12시간 뒤 예상 일기를 기존 모델 대비 3배 높은 해상도로 제공한다. 이전까지 대부분 모델은 10~15㎢ 단위 지역별 기상정보를 6~12시간마다 수집해 분석하는 데 그쳤었다. 2019년 기업용 그래프 출시 후 2021년 세계 기상예보서비스 시장 점유율 1위(18.3%)에 오른 IBM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고 있다.
IBM의 뒤를 바짝 쫓는 기업은 구글이다. 구글의 AI 전담 조직 딥마인드는 2020년 ‘나우캐스트’를 공개했다. 나우캐스트는 실시간, 30분 전, 60분 전 레이더 영상에 찍힌 구름의 양과 지리적 특성 등을 분석해 최대 6시간 뒤 강수량을 5~10분 만에 예측하는 모델이다. 구글은 나우캐스트를 발전시켜 2021년 영국 기상청, 영국 엑서터대와 함께 90분 뒤 강수 확률을 예측하는 AI를 개발,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하지만 구글이 나우캐스트 상용화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구글은 대신 관련 기술 고도화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구글은 지난해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논문을 싣고, 1분 안에 10일 뒤 일기 예측이 가능한 ‘그래프캐스트’를 소개했다.
화웨이의 추격도 심상치 않다. 화웨이의 클라우드 자회사 화웨이클라우드는 최근 43년간의 기상정보를 학습시켜 구축한 ‘판구 웨더’가 기존의 수치 기반 예보 방식보다 20% 더 정확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네이처에 실었다. 화웨이는 이 논문에서 판구 웨더가 1시간~7일 뒤 일기를 예측하는 데 수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중국 기상청은 지난 5월 태풍 마와르가 경로를 바꿨을 당시, 판구 웨더가 이를 5일 전에 탐지하고 새로운 경로와 예상 상륙시간을 정확히 예측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기상예보를 넘어 기후변화 예보를 목표로 지구의 디지털 트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한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 ‘어스-2′를 2021년 발표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AI 칩 ‘엔비디아 H100′을 4608개 장착해 만든 슈퍼컴퓨터 ‘에오스’를 공개하며 “기후변화를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해 대응하려면 오늘날보다 10억배 더 빠른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같은해 엔비디아는 2초 내로 7일 뒤 일기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 ‘포캐스트넷’에 관한 논문을 아카이브에 게재했다.
한국기상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세계 기상예보서비스 시장은 2021년 30억8528만달러(약 4조668억원)에서 2028년 58억3504만달러(약 7조6912억원) 규모로 연 평균 9.72% 성장이 전망된다. 하지만 향후 시장 규모는 이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기상정보를 활용하는 산업 분야가 다양해지면서 기상예보서비스 시장 규모가 확대될 것”이라며 항공, 미디어, 에너지‧공공, 운송‧물류, 보험, 농업, 해양 등의 산업에서 수요가 늘고 있다고 짚었다.
AI 기반 기상예측모델이 실제로 얼마나 유용할 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럽 중기예보센터(ECMWF)의 피터 뒤벤 책임자는 “기상학자들은 일기예보에 머신러닝(ML)을 접목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면서 “아직 개발 초기 단계에 있는 만큼 이런 모델들의 효용성은 장담하기 어렵다. 기후변화 속도도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