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총체적 위기가 찾아왔다.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14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낸 것이다. 대들보나 다름없던 반도체 부문에서 상반기에만 8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1위 DNA라고 자부했던 D램은 SK하이닉스에 추월을 허용했고 TV·가전 부문에서는 LG전자의 수익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삼성전자를 이끌 성장 엔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비관론이 나온다. 조선비즈는 삼성전자가 맞닥뜨린 현실과 구조적 문제를 진단한다.[편집자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6월 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3년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10여년간 스마트폰 시장 개화와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양대 축으로 전성기를 구가해 온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 14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며 위기를 맞았다. 글로벌 반도체 시황과 무관하게 꾸준히 영업이익을 내던 메모리 사업부가 14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으며, 스마트폰을 비롯해 TV·가전 사업의 수익성도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렇다 할 미래 성장 엔진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올해는 ‘세계 1위 DNA’라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에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D램의 경우 지난 십수년간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에 비해 최소 1~2년 이상 앞선 공정 기술을 자랑했지만, 현재는 업체 간 기술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 수준으로 따라잡혔다. 스마트폰 사업도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 구도에서 수익성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으며, TV와 가전도 좀처럼 고비용·저수익의 악순환을 끊지 못하고 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그동안 삼성전자의 핵심 경쟁력은 신제품을 빠르게 만들어 내는 ‘동적 전환 능력’이었지만, 현재는 혁신보다는 원가 맞추기에 집중하고 있다”며 “기술력이란 건 미래에 대한 투자 싸움인데, 현재의 삼성은 이를 찾아볼 수 없는 관리자 조직으로 전락했다”라고 지적했다.

◇ 메모리 부진과 함께 드러난 삼성전자의 민낯

2010년대 초반 삼성전자 실적의 대들보는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했던 IM(IT·모바일) 부문이었고, 2017년 이후 ‘슈퍼사이클(장기호황)’ 국면이 도래하면서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메모리 사업부가 성장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2010년대부터 두 사업부를 동력으로 삼아온 삼성전자는 기록적인 ‘실적 잔치’를 벌여왔다. 하지만 올 들어 양대 사업이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삼성전자의 취약한 ‘기초체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1분기, 2분기를 합쳐 8조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파악됐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불황의 한파를 정면으로 맞은 셈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경쟁사들과 달리 앞선 원가 경쟁력과 미세공정 기술력을 바탕으로 악조건에서도 꾸준히 영업이익을 내왔던 2010년대와 대조적인 결과다. 설상가상으로 파운드리사업부 역시 지난해 7나노(1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5나노 공정 안정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퀄컴 등 주요 고객사를 TSMC에 빼앗겼고 적자 규모 확대에 일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픽=정서희

반도체 실적 쇼크에 가려졌지만 스마트폰 사업도 비틀거리고 있다. 메모리 사업부의 대규모 적자를 어느 정도 메꿔주던 모바일경험(MX) 사업부도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과의 경쟁에 지쳐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지난 1분기 실적을 뒷받침한 갤럭시S23 출시 효과가 사라지면서 올 2분기에는 1분기보다 영업이익 규모가 1조원 이상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김록호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2분기 MX 사업부 매출액은 출하량 부진 여파로 감소했을 것으로 예측된다”며 “전반적인 수요 침체 속에 스마트폰 출하량이 전 분기보다 10% 줄고 평균판매단가(ASP) 역시 플래그십 효과가 축소되며 13% 정도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도 “MX사업부의 스마트폰 출하량 및 판가 하락으로 매출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했다.

생활가전 사업 역시 부진한 것은 마찬가지다. IBK투자증권이 추정한 삼성전자 사업부별 실적을 살펴보면 생활가전사업부는 지난해 4분기 47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2분기까지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판매촉진비, 광고선전비를 전년보다 14% 이상 줄이며 손실 규모가 2분기 들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지만 마케팅 비용 감소와 함께 판매 실적도 악화하는 악순환 구조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 시장 상황 판단 능력도 ‘실종’… 뒤늦은 메모리 감산에 TV 수요 예측도 실패

시장 상황을 예측·분석하는 삼성전자 경영진의 판단 능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경우 2010년대부터 주요 수요처를 크게 모바일, 서버, PC로 나눠, 매출과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IT 시장 흐름을 읽고 예측해 빠른 의사결정으로 생산라인을 효율화했다. 재고 수준을 일사불란하게 조정해 가장 높은 가격에 칩이 공급되도록 유도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시장 예측 능력과 빠른 의사 결정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분위기다. 단적인 예가 올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공급과잉 속에서도 올 초까지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하다가 뒤늦게 감산을 결정해 적자 규모를 키운 것이다. 삼성전자는 경쟁사인 마이크론이 지난해 하반기,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인 감산에 돌입한 것과 달리 올해 4월에서야 소극적으로 감산에 동참한 바 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현재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의 메모리 감산 확대 표명 여부가 절실한 상황이다”라며 “서버, 스마트폰 시장의 둔화세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PC, 모바일 등 세트(완제품) 업체들의 하반기 출하 계획도 최근 들어 하향 조정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수준의 감산으로는 극적인 변화를 만들기가 힘들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최대 매출 품목인 D램 경쟁력이 경쟁사에 따라잡히면서 안팎으로 위기감이 짙어지고 있다. D램 미세공정이 20나노에서 10나노대로 진입하던 시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었다. 삼성전자는 10나노대 후반을 의미하는 1~3세대(1x, 1y, 1z) 공정에서 항상 ‘세계 최초’ 타이틀을 차지했다. 하지만 2021년 마이크론이 4세대 1a D램을 양산하면서 세계 최초 타이틀을 넘겨줬고 DDR5 D램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보다 3~4개월 뒤처진 공정 전환 속도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최근 D램 개발실장을 황상준 부사장으로 교체하며 쇄신에 나섰지만 향후 D램 시장에서 우위를 장담하기가 어려운 분위기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DDR5를 비롯해 AI(인공지능) 시장과 함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사업 영역에서 혁신 기업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삼성전자가 추구해 온 ‘초격차 전략’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TV 사업 전략도 시장 상황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대신 8K(해상도 7680×4320) QLED TV를 차세대 주력 제품으로 내세웠지만, 8K TV 시장은 빛을 보기도 전에 쪼그라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8K TV 출하량은 전년보다 14% 이상 줄어든 약 33만2000대에 그치고, 2027년까지 33만대선에서 정체할 것으로 관측된다. 옴디아는 “(8K TV 시장이) 성장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2020년 말에 이미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TV 시장 예측에 실패하면서 삼성전자의 TV 사업 전략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과거 “OLED TV는 영원히 안한다”던 기존 방침을 뒤집고 뒤늦게 LG전자가 장악하고 있는 OLED TV 시장에 진입한 것이 대표적 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OLED TV 시장에 진출한 것은 그동안의 삼성 TV 사업 수익 모델에 결함이 있다는 의미”라며 “TV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으나, 수익성 측면에서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경쟁사를 쫓아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