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의 수요가 늘면서 내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80% 이상 급성장할 것입니다. 차세대 D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큰 수혜를 입을 것입니다.”
로저 쉥 가트너 VP 애널리스트는 지난 6일 온라인을 통해 진행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글로벌 메모리 시장 규모는 1494억달러로 올해와 비교해 82.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인공지능(AI) 산업 성장과 함께 HBM 등 차세대 메모리 수요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쉥 애널리스트는 다가올 메모리 호황기에 대비해 한국 기업들이 신기술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HBM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HBM을 생산할 때 필요한 AVP(어드밴스드패키징) 기술은 대만 TSMC에 뒤처지는 상태다”라고 말했다. 이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AVP 등 신기술 개발에 집중해 생산에 있어 자립도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쉥 애널리스트는 한국 반도체 시장의 또 다른 성장 동력으로 폴더블폰을 꼽았다. 그는 “PC와 스마트폰 시장 불황은 당분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이 이미 많은 제품으로 포화 상태라 소비자들이 특별한 유인 없이는 제품을 잘 교체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폴더블폰 같은 경우 완성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폴더블폰 수요가 점차 늘면서 D램 등을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율주행 시장이나 가상현실(VR) 등 새로운 분야가 반도체 시장의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쉥 애널리스트는 “자율주행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차량 1대에 적용되는 반도체 개수가 월등히 늘어나게 된다”며 “자동차 출하량이 이전에 비해 적더라도 반도체 수요는 더 늘어날 수 있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이어 “애플을 필두로 VR 관련 장비 수요가 늘어나게 되면 고부가 반도체 제품의 수요도 크게 늘 것”이라며 “고품질 제품으로 신산업 분야에 진출해 많은 고객사를 확보하는 기업이 업계를 지속해서 주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쉥 애널리스트는 파나소닉과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거쳐 삼성전자 반도체 시스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제품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다 가트너에 합류했다. 현재는 가트너에서 반도체 시장에 대한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다음은 쉥 애널리스트와의 일문일답.
-올해 불황을 겪고 있는 메모리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차세대 D램을 중심으로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 산업이 성장하면서 HBM을 비롯한 메모리 제품의 수요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트너는 내년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규모를 1494억원달러로 추정하고 있는데 올해와 비교해 82.6% 성장한 수치다. 2026년에도 34.1% 수준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기업들이 대비해야 될 점이 있을지.
“HBM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내년부터 실적 개선을 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기술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해야 수익을 극대화 할 수 있다. 현재 HBM을 생산할 때 쓰이는 AVP 기술은 대만의 TSMC가 앞서가고 있는 상황이다. 패키징 기술 개발에 집중해 메모리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한 숙제다”
-한국 반도체 기업의 성장을 이끌 다른 제품은.
“폴더블폰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성장을 이끌 원동력으로 보인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률은 저조한 상태다. 내년에는 10% 수준으로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나 그 다음 해부터 다시 한 자릿수의 미미한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많은 제품으로 시장이 포화 상태라 소비자들도 특별한 이유 없이는 제품을 잘 교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폴더블폰은 비교적 새로운 폼팩터를 가진 제품이기에 아직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는 폴더블폰 시장에 오포, 비보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합류하면서 시장 규모도 더 커지고 있다.”
-미래 반도체 시장의 성장을 이끌 분야는.
“자율주행과 VR 산업이 반도체 시장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의 자율주행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반도체 제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자율주행차의 출하량이 일반 차보다 적을 수는 있어도 반도체 수요는 지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아직 개화 단계인 VR 시장이 커질수록 기기 안에 적용될 반도체 제품 수요도 늘 것이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신산업 분야를 선점하는 기업이 업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정한 지정학적 요소가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있어 유럽의 반도체 수요가 불안정할 수 있다. 미·중 반도체 갈등에 따라 기업들의 생산과 설비 투자 등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각 국가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흐름도 반도체 시장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각 국가가 타협점을 찾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