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2월 15일 “통신요금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며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후 140일 만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을 내놨다. 정부는 통신 3사 구도를 깨고 경쟁을 유도해 통신비를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전문가들은 정부가 5개월간 준비한 안 중에 ‘통신비를 확 낮출 획기적인 한방은 없다’고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나온 이야기를 재탕하는 수준에 그쳤으며 구체적인 숫자나 내용도 부족했다는 평가다.
소비자들은 5G 최저요금제 추가 인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 데이터 종량제 도입 등을 기대했었다. 고물가시대에 가구당(1인 가구 이상) 월 평균 통신비가 13만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대책이 효과를 낼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실질적으로 가계 부담을 덜어주는 안이 나와야 하는데, 알뜰폰 사업에 대한 지원 내용만 가득하다”며 “5G 중간요금제 시작 요금 인하에 대한 구체적 안도 없어 소비자 의견을 수렴한 것인지 실망스럽다”라고 했다.
◇ 5G 시작요금 인하·단통법 폐지 등 획기적인 안 없어
소비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내가 내는 통신요금이 얼마나 싸지느냐’이다. 정부가 “단말 종류 상관없이 LTE(4세대 이동통신)·5G(5세대 이동통신) 요금제를 선택해 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현행 요금제를 어떻게 저렴하게 낮출지에 대한 내용은 빠졌다. 정부 방안에는 “다양하고 저렴한 5G 요금제가 지속적으로 출시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연 2회 주기적으로 최적요금제를 고지하겠다”고만 언급됐다. 박순장 사무처장은 “5G 중간요금제가 지난 4월 나왔지만, 여전히 비싸다는 것에 정부가 공감했음에도 얼마나 낮출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며 “최적요금제도 통신비 요금인하에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월 3만원대의 5G 30기가바이트(GB) 요금제가 적당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국소비자연맹 역시 “여전히 5G 요금제의 시작점이 높고 요금제가 지나치게 복잡해 소비자가 통신요금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라고 했다.
여기에 정부는 단통법 폐지 대신 개정을 선택했다. 2014년 도입된 단통법은 지역이나 유통점에 상관없이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보조금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당초 정부는 단통법이 시행되면 통신 3사가 보조금 경쟁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대신 이를 요금에 투입해 통신비가 낮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경쟁에 나설 이유가 사라진 통신사들이 다 같이 돈을 안 쓰는 방향으로 가면서 모두가 비싸게 휴대폰을 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는 사이 통신 3사는 지난해 2년 연속 영업이익 4조원대를 돌파했다. 호갱(속이기 쉬운 고객)을 막고자 한 법안이 전 국민을 호갱으로 만든 법이 된 셈이다.
정부가 발표한 방안은 대리점이나 판매점이 이동통신 사업자가 공시한 지원금의 15% 안에서만 추가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을 30%로 확대하도록 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통법 시행 후 가격 경쟁이 제한되어 실질적으로 소비자들이 단말기를 더 비싸게 사게 됐다”며 “(이번에 발표한 방안에서) 단통법 폐지 대신 보조금만 상향되어 통신비 요금 인하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단말기 보조금을 각 사에서 결정해야 경쟁수단으로 이용돼 통신비가 실질적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가계 통신비를 인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니 통신 3사가 어느 정도 전략적 반응은 하겠지만, 지속가능한 대책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 정부 정책 의존한 알뜰폰 자생력 못 키워
정부는 통신시장 경쟁구조 개선안으로 제4 이동통신사와 알뜰폰 사업자 지원을 내세웠지만, 전문가들은 이것만으로는 실질적인 시장 경쟁을 촉진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장부는 제4 이동통신사 유치를 위해 8번째 도전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현실적으로 자금력이 튼튼한 사업자가 나설지 의문이다. 정부는 할당대가·조건, 망 구축 의무를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으로 부과한다”고 명시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은 이달 11일 열리는 토론회를 거친 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거액의 투자비를 감안하면 과거와 달리 파격적인 안이 발표되지 않는 한 쉽사리 도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했다.
정부는 협상력이 약한 알뜰폰 사업자를 돕기 위해 대신 통신사와 협상에 나서는 ‘도매제공 의무제도’를 상설화하고 도매대가 산정방식을 다양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알뜰폰 사업자 자체의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정부 정책에 의존한 성장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민수 교수는 “알뜰폰 사업자가 스마트 팩토리, 사물인터넷(IoT) 분야에 진출하는 등 스스로 신시장을 확장해 경쟁력을 높이도록 하는 게 지속가능한 안”이라며 “현재의 지원안은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알뜰폰 사업자가 이번 방안으로 얻게 되는 이익을 소비자에게 어떻게 쓸지, 알뜰폰 고객서비스 개선 방안 등은 이번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