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향후 공정 및 패키징 기술 로드맵에 대해 설명하는 팻 겔싱어 인텔 CEO./인텔 제공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한지 2년 만에 인텔을 새로운 기업으로 탈바꿈해나가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왕좌를 되찾겠다며 겔싱어 CEO가 선언한 ‘IDM 2.0′ 전략이 하나둘씩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한동안 막혀있던 기술 혁신에도 속도가 붙었다. 반도체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킬 차세대 기술 분야에서도 다시 인텔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멸종 대신 진화를 선택한 ‘공룡’ 인텔의 IDM 2.0

흔히 종합반도체기업(IDM)을 반도체 공룡이라고 표현한다. 설계부터 제조, 후공정, 마케팅 등 반도체 생산과 판매에 필요한 전 과정의 일체를 직접 수행하는 만큼 조직이 거대화되기 때문이다. 인텔은 현대 IDM의 원조격인 기업이다. 2000년까지만 해도 인텔은 설계, 제조 분야에서 업계에 적수가 없을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TSMC와 같은 거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의 등장과 다양한 팹리스(설계전문기업)의 도약으로 2010년대 들어 인텔의 영향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팹리스와 파운드리 기업의 파트너십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반도체 공정 분야에서 설계, 제조, 패키징 등 전문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모든 과정을 내재화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IDM이 오히려 기술 개발 속도 측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지난 2021년 겔싱어 CEO가 ‘IDM 2.0′을 선언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모든 기술 개발과 제조 과정을 자체적 역량으로만 운영해오던 인텔은 더 개방적인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인텔이 올해 클라이언트 및 데이터센터 부문 제품을 포함한 최신 공정 기술에서 다양한 모듈 타일 제작을 위해 외부 파운드리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 예다. 인텔은 올 하반기에 발표할 PC용 제품인 메테오 레이크가 인텔 최초의 타일형 아키텍처로, 공정 일부를 TSMC에 맡길 예정이다. 인텔이 주력 CPU 공정을 외부 파운드리에 위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대로 인텔의 첨단 제조 시설을 외부 고객사에도 개방한다.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는 앞서 최첨단 프로세스 기술과 패키징, 미국 및 유럽 제조 역량 등 고객을 위한 세계적 수준의 IP 포트폴리오를 결합해 차별화된 제품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인텔은 2025년 양산할 18A(옹스트롬) 공정에 파운드리 고객 유치를 위해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반도체 패키징 기술 분야에서 ‘개방형 시스템 파운드리’를 도입해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관측된다. 개방형 파운드리는 서로 다른 공정, 제조시설에서 제조한 모듈을 하나의 패키지로 완성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한 에코시스템이다. 또 인텔은 파운드리 서비스 고객이 필요한 모듈만 사용할 수 있는,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로 구축해 제품 설계, 웨이퍼 제조, 패키징, 어셈블리(조립), 제조 선별 테스트까지 개별적으로 사용 가능하도록 했다.

세계 각지에 위치한 인텔의 반도체 제조 공장들. /인텔 제공

유럽과 미주에 제조망을 확충해 균형 잡힌 글로벌 공급망을 완성하기 위한 투자도 한창이다. 현재 인텔은 미주에 471억달러(61조원)을 투자해 미국 오하이오와 애리조나, 코스타리카, 뉴멕시코 등지에 각종 생산, 테스트 시설을 설립하고 있다. 유럽에는 무려 803억달러(104조원)를 쏟아부어 독일에 최첨단 팹 2개, 폴란드와 이스라엘, 프랑스, 아일랜드, 스페인 등지에도 첨단 제조 시설을 짓고 있다.

◇ 공정 전환에도 가속도… ”4년 내 5개 공정 완성”

데이비드 진스너 인텔 CFO는 최근 “인텔 CEO인 팻 겔싱어의 인텔 복귀 이후 첫번째로 집중한 분야는 제조 역량과 공정, 제품 주도권을 재확보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2025년까지 4년간 5개의 공정을 완성하는 전략을 세웠고 이 계획은 현재 차질 없이 실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인텔은 오는 2025년 공개를 목표로 최신 18A 공정 기반 제품 개발 중이며, 현재까지 5개 이상의 내부 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인텔은 2021년 7월 진행된 ‘인텔 엑셀러레이티드 웹 캐스트’에서 상세한 공정 및 패키징 기술 로드맵을 공개했다. 인텔은 공식적으로 기존의 나노미터 기반 프로세스 공정의 명칭이 실제 게이트 길이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1997년부터 인식해 왔다고 밝히며 앞으로는 ‘나노’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텔이 발표한 5개 공정은 인텔7, 인텔4, 인텔3, 인텔 20A, 인텔 18A다.

인텔 7은 핀펫(FinFET) 트랜지스터 최적화를 기반으로 인텔 10나노 슈퍼핀(SuperFin)에 비해 와트당 성능을 약 10~15% 향상한 공정이다. 인텔4는 최첨단 반도체 노광장비인 EUV(극자와선) 리소그래피를 전면 도입한 공정으로 면적 개선 뿐 아니라 와트당 약 20%의 성능을 향상했다.

인텔 20A는 옹스트롬(0.1nm) 시대를 여는 주요한 두 가지 혁신 기술인 ‘리본펫’과 ‘파워비아’를 활용한 첫 공정이다. 리본펫은 인텔이 GAA(Gate-all-around) 트랜지스터를 적용한 것으로, 이는 인텔이 2011년 핀펫 이후 처음 선보이는 새로운 트랜지스터 아키텍처다. 이 기술은 더 빠른 트랜지스터 스위칭 속도를 제공하는 동시에 더 작은 면적 구현이 가능하며 다중 핀과 구동 전류가 동일하다. 파워비아는 업계 최초로 후면 전력 공급을 구현한 인텔만의 제품으로 웨이퍼 전면에 전력 라우팅이 필요하지 않아 신호 전송을 최적화했다. 인텔 20A는 2024년에 생산을 시작하며 2025년에는 20A에서 트랜지스터 성능을 다시 끌어올린 18A를 양산한다.

인텔의 반도체 공정 로드맵. /인텔 제공

패키징 분야에서도 기술 혁신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1년 7월, 인텔은 새로운 IDM 2.0 전략으로 무어의 법칙 효용을 실현하는데 있어 패키징 기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인텔은 실리콘 다이를 서로 연결하고 모듈 설계를 위한 3D 적층 기술을 활용해 무한한 유연성과 성능을 제공하는 포베로스 옴니(Foveros Omni), 3D 적층 상호연결 밀도를 10 마이크론 이하로 범프 피치를 구현해 이전에는 달성할 수 없었던 기능별로 다이를 분리하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포베로스 다이렉트(Foveros Direct)를 연내 구현한다는 방침이다.

◇ 결실 맺는 IDM 2.0, 반도체 공정 새 변곡점 만든다

인텔의 IDM 2.0 전략의 결실은 메테오레이크 CPU 출시와 함께 결실로 드러날 전망이다. 메테오레이크는 인텔4 공정 노드 기반으로 제조되는 최초의 클라이언트 프로세서다. 포베로스 첨단 3D 패키징 기술로 구현된 최초의 클라이언트 칩렛 디자인으로, 향상된 전력 효율성과 그래픽 성능을 제공하며 인텔 클라이언트 프로세서 최초로 전용 AI 엔진인 인텔 AI 부스트를 탑재한다.

미래 기술 분야에도 적극적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인텔은 최근 새로운 양자 연구 칩으로 12큐비트 실리콘 칩인 터널 폴스(Tunnel Falls)를 공개하고 양자 연구 커뮤니티에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양자 컴퓨팅 연구 발전을 위해 국가 차원의 양자정보과학(QIS) 연구센터인 메릴랜드대 칼리지 파크 큐비트 공동 연구소(LQC)의 물리과학연구소(LPS)와 협력하기로 했다.

챗GPT와 함께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고 있는 딥러닝 AI 프로세서 분야에서도 인텔은 2세대 하바나 가우디2를 앞세워 시장을 공략해나가고 있다. 지난해 7월 인텔 2세대 하바나 가우디2 러닝 프로세서와 엔비디아 A100의 AI 총 학습 시간 성능을 MLPerf 벤치마크 상에서 측정한 결과, 가우디2의 딥러닝 프로세서 성능이 월등한 지표를 나타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권명숙 인텔코리아 사장은 “인텔은 2021년 팻 겔싱어 인텔 CEO 취임 이후 수립한 IDM 2.0 전략을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해 4년 동안 5개의 노드를 완성하겠다는 목표 달성도 순항 중이다. 유럽과 미주에 제조망을 확충해 균형 잡힌 글로벌 공급망을 완성하겠다는 계획도 변함없이 추진 중”이라며 “더 다양한 파트너, 고객과 협력할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