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확보전이 치열한 가운데 반도체를 전량 수입하는 인도에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반도체 생산시설을 전 세계 곳곳에 분산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과 인도 정부의 통 큰 지원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인도 정부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을 앞세워 반도체 기업 투자금의 절반 이상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걸고 있다. 이 러브콜에 미국 최대 메모리 제조업체 마이크론과 세계 반도체 장비업체 1위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MAT), 또 다른 미국 대표 반도체 장비업체 램리서치 등이 화답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자국 기업의 인도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마이크론·AMAT·램리서치, 인도에 투자하고 인력 양성
마이크론은 지난 22일(현지시각) 8억2500만달러(약 1조700억원)를 투자해 인도 구자라트에 첫 반도체 조립 및 테스트 시설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총 27억5000만달러(약 3조6000억원) 규모로, 인도 중앙정부가 전체 프로젝트 비용의 절반을 부담하고 구자라트 주정부가 나머지 비용의 20%를 댄다. 마이크론은 메모리 반도체인 D램과 낸드플래시 웨이퍼를 들여와 이 시설에서 볼그리드어레이(BGA) 집적회로와 메모리 모듈 및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생산할 예정이다. 올해 50만제곱피트(약 1만4000평) 규모의 클린룸 착공에 돌입해 내년 말 첫번째 공장 가동이 목표다. 이후 5년 내 이와 비슷한 규모로 두번째 공장을 짓고 생산능력을 점차 늘려갈 것이라고 마이크론은 전했다. 이로써 인도에선 5000개가량의 직접 일자리와 1만5000개의 간접 일자리가 생겨날 전망이다.
이날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도 인도 벵갈루루에 4년간 4억달러(약 5200억원)를 투입해 반도체 제조 장비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둔 엔지니어링 센터를 짓겠다고 밝혔다. 이 시설을 통해 최소 500개의 고급 엔지니어링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AMAT는 내다봤다. 이미 인도에 사업장 6곳을 두고 있는 AMAT는 “인도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기업과 더욱 긴밀히 협력해 반도체 기초 장비 공급망을 강화하려 한다”며 “이젠 인도가 놀라운 성장을 주도할 때가 왔다”고 했다. 마이크론과 AMAT에 이어 램리서치도 향후 10년간 인도에서 6만명의 현지 엔지니어를 반도체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는 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 인도, 지원금 100억달러 내걸어… 대만 폭스콘도 반도체 투자
인도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 유치를 위해 마련한 지원금은 100억달러(약 13조원)다. 이 지원금으로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레거시(구형 공정) 반도체 공장을 짓고 제조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게 인도의 목표다. 세계 1위 인구대국으로 내수 시장이 거대한 인도는 제조 시설이 부족해 연 1000억달러(약 131조원) 규모의 전자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인도 전자반도체협회에 따르면 인도의 반도체 시장 규모는 지난해 280억달러(약 36조원)에서 2026년 640억달러(약 8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인도의 지원 정책에 힘입어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 제조업체 대만 폭스콘은 지난해 인도 최대 천연자원 개발사 베단타와 반도체 제조 합작사를 세우고 반도체 공장 건설에 190억달러(약 25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밖에 인텔이 인수한 이스라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타워세미컨덕터 컨소시엄과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IGSS벤처스도 투자 의사를 표명했으나 이들은 기술력 결여 등의 문제로 아직 인도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에 인도 정부는 이달 초 지원금 신청 창구를 다시 열고 이들 기업을 포함해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 지원서를 새로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