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 유영상 SK텔레콤 겸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조선비즈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25억달러(약 3조2000억원)의 투자 선물을 안긴 데 이어 이달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방한해 한덕수 국무총리 등과 만난다. 통신업계는 2020년부터 SK브로드밴드와 ‘망 사용료’ 문제를 놓고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는 넷플릭스가 구애 작전을 벌이는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한국 1심 법원이 망 사용료 소송에서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이나 대법원에서는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특히, 미국 정부가 나서 넷플릭스를 지원 사격하고 있고, 우리 정부도 망 사용료 문제가 한미간 통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사법부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망 사용료 법적분쟁은 SK브로드밴드가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망 사용료 협상을 중재해달라며 낸 재정 신청에서 시작됐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해 통신망에 큰 부담을 주는 만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2020년 4월 방통위의 중재를 거부하는 대신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는 취지의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한국 법원에 냈다.

◇넷플릭스, 尹 대통령에 25억달러 투자 선물… 美 정부 지원사격까지

넷플릭스는 1심 판결 후 한국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발표와 함께 정부 수장과의 친분을 쌓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례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CEO가 지난 4월 윤 대통령과 미국 워싱턴DC에서 만나 25억달러의 투자를 발표한 자리는 넷플릭스 측의 제안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글로벌 기업이 한국 대통령에 이어 국무총리와 연쇄 회동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것이 산업계의 반응이다.

미국 정부 역시 자국 사업자인 넷플릭스 지원에 적극적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2년 각국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한국의 여러 의원이 콘텐츠 사업자(CP)가 통신사에 망 이용료를 의무적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한국의 국제무역 의무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보고서에는 “미국은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입법부의 노력을 지켜보고자 한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망 사용료에 대한 논의가 통상 문제로 불거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앞서 올 1월에는 호세 페르난데스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이 방한해 넷플릭스 한국법인과 구글코리아 관계자와 만난 후 자신의 트위터에 “망 중립성은 우리 모두가 콘텐츠를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고 올렸다. 망 중립성은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데이터 트래픽을 내용·유형·기기 등과 관계 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인데, 넷플릭스는 망 중립성 원칙 등을 논거로 망 사용료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 韓 정부, 망 사용료 입장표명 소극적… “통상문제 고려해야”

한국 정부는 ‘망 사용료’에 대해 입장표명을 자제하며 소극적인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서랜도스 CEO와 만난 자리에서 “파격적인 투자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했을 뿐 망 사용료 문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망 이용료 관련 질의에 “최근 망 이용료 논란과 관련해 통상문제를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같은 국제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지난 15일 망 이용료에 대한 질문에 “정부가 어떤 입장을 내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라며 “종합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겠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법적분쟁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것은 K-콘텐츠의 비약적인 성장에 넷플릭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K-콘텐츠가 글로벌 플랫폼인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윈윈 관계인 만큼 넷플릭스를 자극할 발언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현 정부는 과점체제에서 막대한 이익을 누리는 통신 사업자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통신 사업자가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일종의 통행세를 받아내는 데 힘을 보탤 수는 없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통신사에 요금인하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이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는 SK브로드밴드가 이익을 더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망 사용료 부가가 소비자한테는 어떤 효과를 낼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망 사용료를 부가하면 불이익이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오히려 콘텐츠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망 사용료에 대한 법제화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측이 협상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안이라 말한다. 1심 재판부 역시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대가를 금전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지 않고 합의에 따라 ‘다른 대가를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결국 콘텐츠 제공자(CP)와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간의 협상이 필요한데, 글로벌 사업자와 국내 ISP가 협상하는 게 쉽지는 않다”며 “정부가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며 망 사용료에 대한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간의 소송이 통상이슈로 불거질 가능성이 있는데, 한미 FTA에서는 망 사용 관련 내용은 없고 부가통신사업자를 차별하지말라는 내용만 담겼다”면서 “현실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한국이 망 사용료를 부과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