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최첨단 반도체 공정 장비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주문량을 대폭 줄이며 설비투자 속도조절에 나섰다. 경쟁사인 삼성전자 역시 전반적인 생산량 감축 기조와 더불어 파운드리 사업부가 고객사 확보에 애를 먹으면서 신규 설비투자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올 2분기에 TSMC는 EUV 장비가 개발된 이후 처음으로 주문량을 40%가량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선단 공정에 필수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EUV 장비 주문량을 줄였다는 것은 실적 부진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다는 의미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회사 ASML이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는 EUV 장비 가격은 대당 1500억~2000억원에 달하며, 현재 5나노 이하 최선단 반도체 공정에 사용된다.
TSMC와 삼성전자의 이 같은 행보는 반도체 시황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현재로서는 그렇게 크지 않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주요 시장조사업체들은 IT, 모바일, 서버 등 주요 반도체 시장에서의 수요 부진이 상반기에 저점을 찍고 하반기에 반등할 것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최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반도체 장비 시장 통계 보고서’에서 올 1분기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 매출이 268억달러(약 34조29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9% 상승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 확대에 기대한 기대감이 전반적인 반도체 장비 매출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업계 최선단 공정을 이끌고 있는 TSMC와 삼성전자가 EUV 장비 구매를 주저하고 있다는 것은 당분간 IT 업계 전반에 걸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기 힘들다는 분석이 깔려있다. 실제 TSMC는 올해 3분기 실적 악화에 대비해 설비투자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96% 줄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 2분기 매출 가이던스(잠정치)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6% 하락한 약 20조원으로 집계됐다.
3나노를 비롯한 최첨단 미세공정에서 EUV 장비의 생산성에도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어있다. 대만 현지 주요언론에 따르면 TSMC는 올해 3나노 공정 파운드리 가격을 웨이퍼 한 장당 1만9865달러로 책정했다. 이는 이전 공정인 5나노보다 무려 50%, 7나노 공정과 비교하면 2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 관계자는 “이론적으로는 3나노 공정의 칩 성능과 전력 효율성이 5나노와 비교해 30~40% 개선되어야 하지만 실제로 테이프아웃(설계가 끝난 이후 실제 양산된 제품)된 칩을 살펴보면 이에 미치지 못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파운드리 가격이 급격히 오르는 것은 삼성, TSMC 모두 아직 EUV 장비의 효율을 완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역시 평택에서 증설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3공장(P3) 설비투자를 늦추며 속도조절에 나선 상황이다. 올해 4분기 예정된 첫 제품 양산을 내년으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당초 올해 4분기부터 본격 가동이 예상됐지만 반도체 수요 부진의 골이 깊고 주요 IT 회사들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늦춰지고 있어 보수적인 접근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EUV 장비 주문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들 전망이다. 앞서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전 세계적인 반도체 시장 수요 침체 속에서도 선두인 TSMC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투자 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3나노 선단 공정의 조기 도입에도 고객사 확보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EUV 설비 구매에 주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