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를 비롯해 인텔, 삼성전자 등이 인공지능(AI) 칩 생산 분야에서 시장 리더십 경쟁에 나섰다. 특히 애플과 같은 대형 고객사들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맡기며 칩렛(Chiplet)과 같은 최첨단 후공정 기술 투자를 요구하는 등 고난도 패키징 기술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12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TSMC는 최근 최첨단 칩렛 제품 후공정 생산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팹6′ 가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생산라인의 경우 첨단 AI 칩 후공정에 특화한 생산라인으로, 3D 패키징을 ‘올인원(All-in-one)’으로 제공하는 최초의 반도체 공장이 될 전망이다. 애플 아이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맥북용 CPU 칩의 AI 성능을 강화하기 위해 애플이 해당 팹 투자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손’ 애플, 반도체 생산업체에 ‘칩렛’ 공정 요청
전통적으로 반도체 패키징은 가공을 마친 웨이퍼를 포장하는 후공정 기술로, 반도체 보호만을 위한 공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공정에서 미세공정 전환 난도가 높아지면서 3D 적층, 인터포저(Interposer), 칩렛 등과 같은 후공정 기술을 통해 반도체 성능 향상을 모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중에서도 TSMC, 인텔, 삼성전자 등 대형 반도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분야는 칩렛이다. 칩렛은 프로세서를 구성하는 작은 구성 단위로, 레고 블럭처럼 반도체 기판을 구성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가령 하나의 칩에 3나노(㎚), 5나노, 10나노 기술이 공존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칩을 고성능 파트와 저비용 파트로 나눠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애플을 비롯해 아마존, 테슬라, IBM, 인텔 역시 칩렛 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제품 개발 계획을 내놓고 있다. 앞서 인텔은 최근 칩렛 기술을 바탕으로 강력한 슈퍼컴퓨터에 사용될 47개의 칩세트를 갖춘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 프로세서를 선보였고, AMD도 지난 1월 첨단 슈퍼컴퓨터에 쓰일 프로세서 MI300 개발 계획을 공개하기도 했다.
국내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인 오픈엣지테크놀로지의 이성현 대표는 최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현재 반도체 미세공정과 기술 흐름을 봤을 때 칩렛은 시장 생태계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며 주요 기업들 역시 비용, 성능을 위해 칩렛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욜그룹은 오는 2027년까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80%에 칩렛 스타일의 디자인이 사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TSMC·인텔, 패키징에 대규모 투자 단행… 삼성도 시동
반도체 기업 가장 적극적으로 패키징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은 TSMC와 인텔이다. 시장조사업체 욜디벨롭먼트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첨단 패키징 시장 설비투자 규모 중 59%를 인텔과 TSMC가 가져갔다. TSMC는 지난해 11월 첨단 패키징 생태계인 ‘3D(3차원) 패브릭 얼라이언스’도 조직했다. 자체 패키징 기술을 표준화하면서 시장 주도권을 빠르게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패키징 생산시설과 관련해 아직 새로운 신규 투자건은 발표한 바 없지만, 일본에 약 300억엔(약 2971억원)을 투자해 요코하마에 반도체 R&D 시설을 설립하는 데 이어 기존의 후공정 거점인 천안, 온양 공장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올해 삼성전자는 AVP(어드밴스드패키징) 전담팀을 조직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패키징에 어느 정도의 규모 투자가 이뤄지는지는 밝힐 수 없지만, 기술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글로벌 반도체 패키징 시장의 ‘절대 강자’는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생산 분야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TSMC가 점유율 58.5%로, 메모리반도체(D램)는 삼성전자가 45.1%로 압도적 1위인 것과 다르다. 일부 패키징 전문 기업들이 있지만 TSMC, 인텔, 삼성전자 모두 해당 기업들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체적으로 기술력을 내재화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현재 세계 반도체 패키징 시장 점유율 1위는 대만 ASE가 30%, 2위는 미국 앰코가 15%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