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류수정 사피온 대표, 이성현 오픈엣지테크놀로지 대표, 김정욱 딥엑스 부사장. /각사 제공

챗GPT 열풍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기반 반도체 기술이 각광받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옛 삼성종합기술원(현 SAIT) 출신 젊은 창업자들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SAIT는 삼성그룹 미래기술 연구개발(R&D)의 컨트롤타워로 꼽힌다. 이른 나이에 삼성을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한 이들은 2017년쯤부터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다.

3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사피온, 딥엑스, 오픈엣지테크놀로지 등 최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반도체 기업들의 창업자 또는 최고기술책임자(CTO)에 SAIT 출신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삼성종기원 출신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시스템LSI 사업부 출신 엔지니어들도 스타트업에 합류하면서 한국 반도체 생태계 다양화에 기여하고 있다.

SK그룹 산하에 첫 AI 반도체 전문 기업으로 출범한 사피온은 SAIT에서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전문연구원을 지낸 류수정 대표가 이끌고 있다. 류 대표는 종기원 시절 디지털신호프로세서(DSP)와 모바일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학회 ‘ISSCC’의 머신러닝 분과 커미티 멤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사피온은 AI 반도체 중 하나인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까지 100% 내부 기술로 개발, AI 반도체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데이터센터 추론 서비스 반도체 시장과 자율주행 반도체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로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X220)를 개발하고 상용화에 성공했으며, AI 시장 확대를 위한 상용 서비스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에지용 NPU 분야에서 국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딥엑스 역시 SAIT 출신 김정욱 부사장이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김 부사장의 경우 삼성종기원 시절 류수정 사피온 대표와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동료 사이로 알려져 있다. 딥엑스의 경우 애플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설계자 출신 김녹원 대표와 삼성 반도체 출신들이 요직에 포진, 애플과 삼성의 DNA가 합쳐져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반도체 IP 전문 기업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오픈엣지테크놀로지의 이성현 대표도 2007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반도체 설계 책임 연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이후 삼성전자 시스템LSI 등에서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이 대표는 삼성 출신 연구원들을 모아 2017년에 오픈엣지테크놀로지를 창업했다.

SAIT(구 삼성종합기술원) 전경. /삼성전자 제공

SAIT는 아니지만 지난 2017년 국내 팹리스인 퓨리오사AI를 설립한 백준호 대표도 삼성전자와 AMD에서 반도체 설계를 담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퓨리오사AI는 현재 NPU,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등을 개발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와 자율주행차, 클라우드, 로보틱스 등 서비스에 바로 적용 가능한 수준의 AI 반도체를 설계해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AI, 자율주행, 초고해상도 반도체 스타트업인 퀄리타스반도체 역시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던 공학박사들이 의기투합해 창업한 기업이다. 2017년 당시 삼성전자 출신 공학박사들이 빌라 지하실 단칸방에서 시작한 일화가 널리 알려져있다. 김두호 퀄리타스반도체 대표는 4년여간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 퇴사 후 창업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중에 삼성종기원 출신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종기원이 삼성전자 내에서도 박사급 전문 인력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으며, 반도체 부문 사업부에 비해 개인의 역량을 발휘하고 개발에 집중하기에 좋은 근무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SAIT의 경우 2~3년의 기간을 두고 자유롭게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연구자가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좋은 환경”이라며 “삼성 출신 연구자들이 스타트업이나 창업을 선택할 때 삼성이 투자를 결정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