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자율주행 프로세서 드라이브 토르./엔비디아 제공

반도체 설계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칩 설계가 각광받고 있다. AI가 설계 오류를 찾아내고 개선사항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등 비용·개발기간을 줄이면서 엔비디아, TSMC, 미디어텍 등을 중심으로 AI를 활용한 칩 양산 사례가 늘고 있다.

22일 반도체설계자동화(EDA) 중 하나인 시놉시스는 자사의 AI 툴을 활용해 전 세계적으로 200개의 칩이 설계돼 생산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AI를 바탕으로 칩의 트랜지스터 배치와 경로를 최적화해 더욱 효율적인 칩을 만들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엔비디아, TSMC, 미디어텍, 르네사스, IBM 등이 모두 칩 설계 작업에 AI 툴을 상용화하기 시작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설계비용, AI 도입으로 ‘다이어트’

일반적으로 반도체 설계는 소비전력(Power), 성능(Performance), 면적(Area) 등 이른바 ‘PPA’에 최적화된 소자 배치를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들은 설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프로그래밍해 수십억개의 소자들로 구성된 칩의 도면을 만든다. 이 과정이 적게는 수주일에서 수개월 이상 소요된다.

이 같은 반도체 설계 과정에 AI가 도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AI가 엔지니어들의 설계 오류를 감지하고 개선사항을 자동으로 제시해 더 나은 설계안을 도출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전공정 중에서도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설계자동화 단계에서 높은 집적도가 필요한 칩 설계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게 됐다.

반도체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전문회사 케이던스(Cadence) 관계자는 “한 명의 엔지니어가 AI 툴을 사용해 10일 만에 5나노미터 휴대폰 칩의 성능을 14% 개선하고 소비전력을 3% 감축했다”며 “이는 10명의 엔지니어가 수개월의 작업을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AI와의 협업이 10배 이상의 생산성을 낸 셈”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최선단 공정에 진입할수록 설계에 드는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BS에 따르면 3나노 공정을 활용하는 반도체 디자인(설계) 비용은 최대 5억9000만달러(약 72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나노(4억1600만달러)와 7나노(2억1700만달러) 공정 설계 비용과 견줘 각각 41.8%, 171.8% 증가한 수치다. 구공정인 28나노 공정 설계 비용이 4000만달러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3나노 공정은 10배 이상의 자금이 필요한 셈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팹(공장) 내부./삼성전자 제공

◇선단 공정 설계에 엔지니어 100명 이상 필요

칩이 첨단화할수록 설계에 필요한 인력도 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통상 5나노 이하 반도체 설계에는 100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팹리스 관계자는 “5나노 이하 선단 공정에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인력뿐만 아니라 설계 소프트웨어 비용도 급격하게 늘어난다”며 “6억달러에 육박하는 비용 중 거의 절반은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과거 “반도체 업계에 만연한 극심한 인력난을 AI 솔루션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AI는 어디에든 도입되는데, 반도체 칩 설계조차도 AI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반도체 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AI 기반 반도체 설계 기술이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는 중이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가 개발한 AI 반도체 설계툴은 엔지니어가 설계한 회로보다 에너지 효율성이 2.3배 높은 회로를 설계했다. 대만 반도체 설계업체 미디어텍은 AI 툴을 활용해 핵심 프로세서 부품 크기와 소비전력을 각각 5%, 6% 줄였다.